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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글/시22

코 고는 소리 살짝 감은 눈의 의도가 채 읽히기도 전에 드르렁 코 고는 소리 들려온다 꾸부정 누운 자세 괜시리 또 시선가게하고 드르렁 코 고는 소리 리듬에 맞춰 시간의 모진 심성 얄밉고도 너무 고약해 슬픔의 정서가 솟구쳐 오른다 드르렁 코 고는 소리 멈추게 하려고 흔들어 보다가 깊이 패인 세월의 자국 위에 한 방울 눈물을 흘렸다 두 눈 힘주어 꽉 감아 보고 두 손 꼬옥 쥐어 본다 표현할 수 없는 위대한 마음의 고향이 너무나 곤하게 잠을 주무신다 드르렁 코 고는 소리 계속 듣고 싶다. 2009. 10. 12.
꽃의 심장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한다 마음 속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그대 향한 욕망을, 소망을, 정열을 외로운 심장의 한복판에 살며시 다가와 어느새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버린 그대는 나의 일부이며 전체이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니 그것이 사랑이 아닌가 앞날의 불안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려는 그대, 꽃의 심장에 칼을 꽂지는 않으리니 입맞춤으로 불안을 잠재우고 싶다 2009. 10. 7.
신기루 내일은 비가 올 것 같다. 하늘이 먹구름으로 뒤덮여있다. 먹구름은 서쪽을 향해 서서히 움직이고 있다. 온 몸이 끈적거린다. 걸음이 무겁다. 한 발 한 발 내딛을때마다 느껴지는 철근 같은 무게감은 분명 삶의 상실로부터 연유하는 것이다. 길은 끝없어 보인다. 목적지에 도달하려면 아직 수십 킬로는 더 가야 한다. 걷는다는 것은 고행이다. 이미 군대 시절 행군을 통해 깨닫지 않았던가. 군대에서 가장 힘든 훈련은 유격이나 사격 같은 것이 아니다. 행군이다. 수많은 잡생각을 하며 걸어야 한다는 것, 그것만큼 힘든 건 없다. 간혹 보기 좋은 풍경도 지나치지만 감상할 시간이 넉넉치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외부의 것들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외부와의 모든 통로는 꽉 막혀버렸다. 아마도 첫 번째 상실을.. 2009. 10. 1.
이불 속에서 오늘은 일찍 이불을 뒤집어 쓰고 찔끔거린다 먼저 간 친구 땜에 맘이 시리기도 하고 오르지 못할 나무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벌레에 물려 파스 바른 자리가 화끈거려 속이 울컥 거린다 그래도 손은 어느새 아랫도리를 감싸쥐고 부스럭 거리면서 머리에게 말을 건다 생각을 멈추라고 현재를 즐기라고 무엇이 남든 밑지지 않는 장사라고 머리도 손에게 자위 하지 말라고 이도 저도 아닌 따로 놀음이 불쾌하다 이불을 걷어차고 다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찔끔거린다 불쾌하게! 2009. 10. 1.
한 점(點) 검푸른 바다 위에 일몰의 햇빛이 비칠때 지구 위의 한 점 썰물의 해류에 이리저리 두둥실 고개를 바다 물 속으로 디밀자 황록색 도는 연한 녹색의 바다 시민들이 사태스러워진다 개 흉내내며 바다 시민들 쫓아가자 끝이없다 고개를 번쩍 들자 저멀리 불빛 죽기 살기로 불빛 향해 돌진한다 일몰의 햇빛이 더욱 감상을 부추기고 육지에 오른 건 빈 껍데기 뿐 알맹이는 바다 속에 남겨 두고 왔다 하얀 여백이 검은 그림자로 차츰 차츰 덮혀 가는 것처럼 한 점, 한 점, 한 점 지구를 덮어간다. 2009. 10. 1.
집(集) 내 속의 불타(佛陀)를 설(說)하시는 불타의 가르침이 쟁쟁한데 오늘 불타의 집(家)에 머물러 거리의 종소리를 듣는다 내 오랜 사유의 집(集)에 엉켜있는 낡은 거미줄은 누구의 실타래인가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집(集)을 나왔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항상 뭔가에 쫓기고 항상 뭔가를 소유하고자함이 미물의 지향에 다름아니다 찬불가는 어느새 어릿광대 익살노래가 되고 불상의 시선은 원망하듯 낯설은지라 피하듯 자리를 뜬다 얼마마한 업보를 지고 가려 하는가 전생의 짐만으로도 너무 무거워 쓰러지려하는데 인내나 절제를 불사리탑만큼이나 높이 날려보내려 하고 있다 돌아보지 않겠다고 맹세한 길 위에 서서 은은히 들려오는 독경 소리, 목탁 두드리는 소리 들으며 집(集)으로 집(集)으로 향한다 다시는 집(集)을 나서지 않.. 2009. 10. 1.
살면서 점점 늘어난 팔, 다리, 눈, 귀, 코, 입, 허리, 손가락... 무엇하나 버리기 아까운 흔적들, 분신들, 이중들 소유나 집착이기 보다는 마음 편한 대로 존재하기 때문 그러나 세상의 시간은 결국 버릴 것을 강요한다 버리고 또 버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때 삶의 완성이 이루어 진다고 사실 비로소 성장을 멈추고 해결할 수 없는 또 다른 세상에 직면한 것일뿐 울면서 꼭 움켜 잡으려해도 버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쳐도 하나 둘 미끄러져 녹아간다 아파도 어쩔 수 없는 내 육신이여! 내 짐이여! 2009. 9. 30.
자화상(自畵象) 절망의 시간에 즈음하여 눈이 아프고 귀가 따갑고 머리가 어지러워 허무의 책상 위에 엎드려 있다 유리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볼 때 그것만큼 안타까운 것은 없을 것이다 고백한다, 노예라는 것을 외로움, 고독, 물과 나무, 태양, 달과 별, 사랑, 욕망, 자만, 꿈, 책, 시계, 춤, 그림, 옷, 텔레비젼, 연극, 노래, 돈, 구름, 섹스, 조직, 시, 전화, 컴퓨터, 영화, 육체, 천국, 흙, 비와 눈, 꽃, 총과 칼, 자동차, 피아노, 카메라, 희비극의 노예, 끝도 없이 이어지는 추 상과 구상의 노예이다. 반복의 노예이며 절제의 노예, 전 위의 노예이며 전통의 노예이다 머리가 핑핑돌고 눈의 시선은 허공을 맴돈다 미친이의 장난질이나 환자의 신음이 비수처럼 느껴질 때 어디로 향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세상.. 2009. 9. 30.
사랑 사랑Ⅰ 열 여덟 시간 고된 노동을 끝낸 후 까맣게 때 낀 손톱이 보기 싫어서 깨어 물고 뱉고를 한참 했다. 늘상 그렇듯 부지런한 삶들이 버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데 오늘 유난히 그 모습에 의지하며 되뇌인다. "사랑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랑을 알지 못하나니..." 알지 못하게 흘러 내리는 코피도 기다림에 지친 인생들의 연극도 주제없는 생각의 블랙홀도 그리고 잠이 밀려드는 지금 이 순간도 사랑하리라. 사랑Ⅱ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당신이 보입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침묵 속에서도 당신의 속삭임이 들립니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아 봅니다. 당신의 모습은 더욱 증폭되고 당신의 속삭임은 더욱 울려 퍼집니다. 아마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나 봅니다. 당신은 마음의 그림자 당신은 외로움입니다. 사랑.. 2009. 9. 30.
비온 후 어제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서 흐린 하늘에 편지라도 써볼까 했는데 자꾸 노래 가사가 떠올라 그만두고 착잡하고 허망한 심정에 멍하니 하루를 소일했다. 물론 술도 마셨지.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이 비가 그치면 좀 더 더워지겠지. 하늘이 정말 어둡다. 검은 물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데... 다들 잘 모르겠지만 어제 저녁 아주 미미한 지진이 있었다. 그래서 모든게 어제와 똑같지 않은 것이다. 지금 주위를 잘 살펴봐라. 어제와 똑같은 게 있는지... 있다구? 그럼 당신의 눈이 어제와 똑같지 않은 거지. 어제보다 약간 더 비스듬하게 서있는 전봇대 위에 빗방울이 맺혀 흘러 내린다. 아마도 그 빗물을 따라 가다보면 생각의 끝에 다다르겠지. 그리고 정체불명의 기운과 만나겠지. 그건 눈물일까? 곧 기화될 액체에 다.. 2009. 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