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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글/시22

내 머리 속에 대나무 머리 속에 대나무 조각이 하나 박혀있다. 그걸 경계로 머리가 쩍 갈라질 것 같다. 수박이 두 조각나듯 뽑으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욱 깊이 박혀 버린다. 사물을 다루는 나의 기술은 서툴고 투박하다. 강하고 유연한 그 놈은 나를 약하고 경직되게 만든다. 2013. 6. 15.
환상의 류(類) 고무풍선이나 색색의 종이테이프가 공중비행을 한다. 저공에서 고공으로 솟아 오르는 뿌리 깊은 연기자락과 고공에서 저공으로 추락하는 의심스러운 낙하물의 태도에는 알 수 없는 류가 있다. 가끔씩 사람들은 하늘을 쳐다 보고 심호흡을 한다든지 한숨이나 여유를 부리며 상상하곤 한다. 그 어떤 이미지를 모든 움직임이 일순간에 정지되고 홀로 진공의 표류에 따라 대기는 소유된다. 어쩌면 경계선 상에서 꿈과 현실의 일상의 매몰찬 요구에 자신을 허용하는 것이다. 알지 못하는 몸의 경향이지만 그래서 상상하곤 한다. 그리고 일종의 환상의 류가 펼쳐진다. 모든 것은 저항이다. 혹은 홀로그램의 입체면이 생명있는 조각처럼 꿈틀거린다. 그리고 텅 빈 공간에 바람따라 손목 잘린 다섯 손가락이 춤을 춘다. 2013. 5. 28.
굿-바이 친구 케이는 항상 방독면을 쓰고 다닌다 그래야만 살 수 있다고 "당신은 피부로 호흡하십니까? 산소마스크가 필요하시다면 제가 하나 빌려드리지요." 가끔 친구는 방독면 대신 산소마스크를 쓰고서는 길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곤 한다 "숨이 막히시지 않습니까?" 말이 짧아진다 sns, 걸그룹, 스마트폰, 희망은 무엇을 상징함이냐 몸에 걸친 빨간 티셔츠의 감각이나 청바지의 우스꽝스런 꾸겨짐이 퇴색되어 버린 지금 섬짓 놀라 자빠져도 스스로 오늘을 추스리고 사그라드는 육신의 오후에 빛이 비추이면 모든 타락은 이제 제자리로 간다 그러나 친구 케이는 얼마전에 이세상과 굿-바이 했다 친구가 남긴 유품이라고는 즐겨 입던 빨간색 티셔츠, 꾸겨진 청바지, 그리고 방독면 산소마스크는 친구가 굿-바이 하기 얼마전 내게 빌려 주었던.. 2010. 12. 14.
허공(虛空) 두 노숙인이 소주 한 병을 걸고 내기를 한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허허라는 이름의 노숙인이 닭이 먼저라고 얘기하자 공공이라는 이름의 노숙인은 알이 먼저라고 받아친다 서로에게 이유를 묻자 얼굴을 붉히며 언성만 높인다 급기야 서로의 멱살을 부여잡더니 소주를 내 놓으라고 다그친다 이들의 멱살잡이는 봉만이형이 출현하기 까지 계속된다 봉만이형, 닭이 먼저유 알이 먼저유? 아주 중요한 내기니까 심사숙고해서 대답해 주쇼 닭일 수도 알일 수도 있지 뭔 대답이 그리 흐리멍텅하오 닭이 있으니 알이 있는 것이고 알이 있으니 닭이 있는 것이란 말이여 그러니까 뭐시기 먼저란 말이유? 봉만이 형은 하품을 크게 한 번 하더니 교회에 꼬지하러 간다며 발걸음을 옮긴다 두 노숙인은 오랫동안 아무 말도 없이 허공만 쳐다본다 요원해진 .. 2010. 11. 29.
현대인 비명소리에 잠을 깼다 어디선가 분명 불행한 사건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렇지만 대수롭지 않다 들려오는 비명소리 마다 촉각을 곤두 세우다간 단 하루도 편히 잘 수 없을 것이다 이브자리가 축축한 땀으로 얼룩져 있다 영하로 떨어진다는 일기예보에 보일러 온도를 높게 해놓았더니 생각보다 많이 더웠다 머리 속이 물렁물렁 물러터진 지방질로 가득찬 듯 생각이 느리다 보일러 온도를 낮추고 다시 잠을 청한다 비명소리가 들려와도 이곳은 나만의 아방궁, 나만의 은신처, 나는 웃으며 잠 잘 수 있다 2010. 11. 26.
그대 내 안에 뚝. 뚝. 뚝.. 눈물을 흘린다. 보고 싶은 사람에게 내 눈물 보낸다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사람에게 그저 외로움과 죄책감으로 가슴치며 눈물만 보낸다. 영이 있다면, 화답해다오 못난 사내의 가슴에 그렇게라도 함께 라면 그대 이미 내 안에 있소? 2010. 4. 27.
무식자(無識者)의 슬픔 떨어지는 눈물은 곧 슬픔이니 슬픔의 바다가 출렁인다. 눈물은 없음(無)에서 비롯되니 오, 무식자(無識者)의 눈물이여! 무식자(無識者)의 슬픔이여! 바다 속에 몸을 던져 너의 육체를 깨끗이 하고 눈물로 시(詩)를 쓰라. 2010. 3. 20.
생의 마감 상황 얼어붙은 나무, 게다가 쓰러져 있다 그 곁을 지나다 잠시 쉬면서 온 몸의 긴장을 괴로워한다 왜 너는 거기에 쓰러져 있느냐 나의 마음을 도려내느냐 무엇을 상징함이더냐 생명이 있느냐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쓰려져 있다 그리고 그 곁을 지나는 모든 기계들은 괴로워한다 I AM A TREE. 언제인지 모르겠다 어떤 힘인지 모르겠다 별안간 쓰러졌다, 그리고 많은 기계들이 지나가면서 쏘아 보았다 무리들 중 한 둘은 생각할 것이다, 쓰러지기 이전의 모습을 그리고 자랑스레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아직 희망이 있다고 확인 산다는 것은 투쟁, 시간과의 투쟁이다 순간과의 싸움이다 얼마나 단순한가? 긴 시간이 지나도 이처럼 산다는 것은 단순한 것이다 복귀 잠시라도 존재를 잊는다면 사고는 정적의 호수로 빠져든다 호수를 좋아하.. 2009. 12. 23.
비를 기다리며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날 것처럼 심하게 구름이 잔뜩 낀 늦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며 많은 사람들은 웅성거리고 있었다. 머지않은 시간에 비가 내릴 거라고 그날, 비를 기다렸다 하지만 시계침이 자정을 넘기도록 비는 오지 않았다 실내는 건조했고 뜨거운 여름날의 오후처럼 입술은 바짝 타들어갔다 사람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이제 곧 차가운 겨울이 온다고 하지만 누구도 서로를 믿지 않는다. 2009. 1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