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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글/연극

표현주의 연극미학

by Park, Hongjin 2009. 10. 16.

Ⅰ. 서 론

 

표현주의 (Expressionism)는 객관적인 세계를 관찰한 사실에 근거를 두고 삶을 묘사한 자연주의나 미와 형용할 수 없는 세계를 묘사하려고 한 상징주의 모두를 배격하고 논리적인 철학이 아니라 다만 그들 자신을 표현한다는 관점에서 예술에 접근하려는 경향으로 19C 말과 20C 초에 독일의 화가들과 극작가들의 지배적 표현양식이었다.

자연주의의 외면적 사실과 현실에서 동떨어진 상징주의의 공허함에 반해 표현주의는 현실에 대한 각자의 비젼(Vision)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며 온건과 상식 그리고 권위와 관습에 대하여 반항적이었다. 즉 일상생활의 환각을 통해 진실을 찾고자 한 자연주의와 담대의 물질주의의 추함으로부터 보편적 진리와 미의 이상향으로 신비적 도피를 꾀한 상징주의에 비해 표현주의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즉 인간의 개인적인 비젼속에서 진실을 찾고자 하였으며 물질주의의 추악함을 난폭하게 풍자하고 비인간성에 대해 고통에 찬 항거를 보였던 것이다.

"표현주의는 개연성과 모사의 원칙을 벗어나서 추상성을 지향하는 운동이며, 형식적 원칙에 구애받지 않고 표현하고 창조 하려는 욕망이며, 자연주의적 입장이 아니라 보편과 본질의 관점에서 본 도시와 기계에 대한, '지금 이곳'에 대한 위기의식이며, 전통에 거슬러 모반하고 새로운 것, 이상스러운 것을 그리워하는 충동( R. S. Furness, 표현주의, 김길중 역, 서울대 출판부, 1985. 28∼29면 )"이었던 것이다.

본고에서는 표현주의 연극의 실제적인 모습을 통해 위와같은 새로운 표현의 경향과 그 미학적 특성을 고찰해 보기로 하겠다.

 

 


Ⅱ. 표현주의 연극의 태동

 

연극에 있어서 표현주의는 1차대전 전후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산물이었다. 물론 그 영향이 다른 지역에 전파되기는 했지만 표현주의는 독일에서의 빌헬름2세 황제와 오스트리아에서의 프란츠 요세프 황제의 절대권력 그리고 소부르조아지의 물질주의에 대한 반발과 불안에서 싹텄다. 표현주의는 전후 두 나라를 휩쓴 경제적 사회적 혼란 속에서 개화한 것이었다.( 버나드 휴이트, 현대연극의 사조, 정진수 역, 기린원. 1988. 103면 )

1차대전중의 사회혼란과 패전후의 사회질서와 기존 가치관의 붕괴 그리고 악성 인플레이션은 젊은이들에게 환멸을 가져다 주었다. 그들은 기존사회가 제시해 주었던 모든 도덕과 가치관을 거부하고 그들이 피부로 느끼고 직관할 수 있는 솔직한 주관만을 믿고 이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표현주의라는 용어는 "어떤 특정한 순간에 일정한 빛 아래서 보여지는 것으로 대상의 모습을 그렸던 인상주의자들의 그림과 고호와 고갱의 그림을 구분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으로 1901년경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것이다." (Oscar G. Brockett. History of the Theatre, 5ed. Allyn and Bacon. 1987. 598면 ) 인상주의 화가들은 외부적인 현실을 그리려고 했으나 표현주의 화가들은 자신이 본 것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자신의 내부의 생각이나 관점을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새로운 표현의 충동은 연극에 있어서 Buchner(1813-1847)와 Wedekind그리고 Strindberg의 극에서 이미 찾아볼 수 있다. Buchner는 극을 통해 끊임없이 사회와 역사적 사건들에 관한 숙명론적 인식과 "인간 개개인은 파도의 물거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신의 관점을 구체화시킬 표현 방식을 추구해 갔는데 소위 '열린' 구성 방식, 즉 서로의 명백한 연결없이 장면을 배열하는 병렬법에 의해 극의 중심 인물을 여러 인물과 사건의 몽타즈 속에 배치시킴으로써 등장인물의 역사적 배경과 인식의 단편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를 드러내고 있다. 그의 미완성 희곡 <보이체크 Woyzeck>는 에피소드적 구성을 가지고 서정적 요소와 사실적 요소를 혼합한 것으로 많은 표현주의 작품들의 주요 특성 중의 하나를 이룬다.

Wedekind(1864∼1918)는 그의 작품에서 부르조아 사회의 허위 의식을 과감하게 공격했고 성 문제를 그의 주된 주제로 삼는다. 그는 극히 사실적인 희곡에 표현주의적 요소를 가미하는데 이점은 그의 작품의 등장인물들의 연기 양식에서 잘 드러난다. 즉 등장인물들을 단순화시켜 기계적, 비인간적인 양식으로 연기를 하게 하는데 이것은 후에 표현주의 공연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형양식(puppet-like style) 연기의 모델이 되고 있는 것이다. (J. L. 스타이안. 표현주의 연극과 서사극. 윤광진 역. 현암사. 1988. 29면)

최초의 표현주의 연극으로 알려져 있는 <다마스커스로 To Damascus>의 작가 Strindberg는 개연성과 내적 논리의 요청이라는 자연주의의 법칙을 무시하고 "주관주의와 왜곡, 기괴한 극행위 및 몽상적 연결 등의 특성을 보이는데 이것들은 모두 표현주의 연극의 특성과 일치하는 것이다."(버나드 휴이트. 앞의 책. 105면)

이제 연극은 자연주의의 객관성과 상징주의의 예술 지상주의로부터 표현주의의 주관적 영역과 현실에 대한 저항으로 그 흐름을 나타내며 이것은 독일에서 절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Ⅲ. 독일 표현주의 연극

 

А. 성 격

독일 초기 표현주의 연극에서 성의 문제는 커다란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테마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1900년에서 1차대전에 이르는 기간중에 독일의 극작가들은 세대간의 충돌을 치열하게 그리고 있는데 그중 근친상간과 살인의 모티브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R. S. Furness, 앞의 책. 39면)

독일 초기 표현주의 극작가로는 Sorge(1892∼1916), Hasenclever(1890∼1940), Kokoschka(1886∼1980)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의 작품의 특징적인 성격은 다음과 같다.

'극의 분위기'는 꿈과 같고, 악몽과 같다. '무대장치'는 자연주의 연극의 세부 묘사를 피하고 극의 주제가 요구하는 철저히 단순화된 이미지를 창조한다. 극의 '플롯 혹은 구조'는 각기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에피소드, 사건, 극적 장면으로 분리되어 있다. '등장인물'은 개인적인 개성을 가진 인물이라기보다는 유형화된 인물이며 풍자화된 인물들이다. 그리고 특수한 개인이기보다는 사회의 집단을 대표한다. '대사'는 대화와는 달리 시적이며 열정적이며 또한 광상적이다. '연기양식'은 마치 인형의 연기 같은 과감하고도 기계적인 움직임을 취한다. (J. L. 스타이안. 앞의 책. 14∼15면)

1914년 이전의 표현주의 연극은 대체로 자기 내부의 생명력을 표현하고자 하는 고립된 개인의 투쟁을 묘사하였다. 그러나 전쟁을 겪으면서 받은 고통은 새로운 동지의식, 새로운 유대의식을 형성시켰고 그것은 개인적 관심으로부터 인간과 사회의 개혁을 위한 갈망으로 연극의 관심을 변화시키게 된다. 그리고 특히 물질주의와 산업주의를 이러한 목표의 주요 장애요인으로, 또 영혼의 주요 파괴범으로 보고 거기에 심하게 반발한다. 일부 표현주의자들은 옛 사회와 그에 속한 모든 물질주의적 함정들을 타파할 것을 부르짖는데 궁극적으로는 대부분이 전쟁과 위선과 증오가 없는 세계의 건설을 희망했던 것이다.

Kaiser(1878∼1945)와 Toller(1893∼1939)의 극에서 완숙한 단계에 이른 독일 표현주의 연극의 특성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장치'는 추상화 되어있고 극중 장소는 구체화되지 않는다. '극의 행위'는 여전히 에피소드로 분리되어 있으며 주인공의 생애 중 어느 단계를 나타내거나 마치 꿈의 연극처럼 무의식을 통해 본 일련의 환영을 묘사하기도 한다.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개성을 상실한 사람들로 이름을 갖고 있지 않으며 때로는 기이하게 행동한다. '군중' 역시 비인격화 되어 있으며 율동적인 동작에 맞춰 움직이거나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대사'는 소위 전보문 양식(Telegramstil)으로 점차 생략되어 가고 단편적이며 비사실적으로 되어간다. (Ibid. 61면)

결국 표현주의 연극은 대체로 두 가지 모습으로 분류되는데 하나는 초기의 연극으로, 인간 정신의 타락으로 기계보다 나을 것이 없는 상태에 직면한 인간의 부정적 모습에 관심을 집중하였고 다른 하나는 1914∼1920년대 중엽까지의 연극으로 사회와 인간의 개혁과 환경과 인간 정신 사이의 조화를 이루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요청은 새로운 기법을 필요로 했고 이것은 이후의 연극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표현주의자들은 진실이 내면적,주관적 영역안에 존재한다고 생각했으며 자연주의자나 상징주의자들의 환영과는 사뭇 다른 환영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В. 제작 양식

독일의 두 연출자 Jessner(1878∼1948)와 Fehling(1890∼1968)은 표현주의 연극의 제작기법을 발전시키고 대중화하는데 특별히 기여를 많이 했다.

Jessner는 연극을 최소한의 필요한 요소만으로 벌거벗기고 강렬하고 문명한 효과만을 추출함으로써 흥왕과 몰락, 성장과 쇠퇴, 창조와 파괴를 일으키는 결정적인 힘들을 표현하곤 했다. 그는 Appia와 같이 무대를 조각 또는 하나의 입체적 공간으로 파악하고 그 평면성을 거부한다. 그리고 무대를 수직의 삼차원 공간으로 구성했으며 이를 위해 사이클로라마 앞에 덧마루나 계단을 세워 Appia의 조명 개념과 Meyerhold의 무대장치 기법을 혼합시켰다. (Ibid. 80면) 그는 또한 등장인물들의 내면적 감정과 상황의 변화를 반영하도록 색과 조명을 조정한다. Jessner는 주로 고전 작품을 가지고 그의 시각적 접근법을 통해서 거기에 새 생명을 부여하는데 관객에게 강렬한 시각적인 인상을 주기 위해서 형태와 선은 매우 박력있게 구사되고 또한 관객에게 가능한 한 강한 호소력을 주기 위하여 종종 무대를 객석 깊숙이 침투시키곤 한다. 독백과 방백은 직접 관객에게 던져졌고 인물의 동작도 무대장치처럼 사회적, 정치적, 감정적 그리고 심리적 관계의 역동성을 표현해 주었다. (버나드 휴이트, 앞의 책, 115면)

Fehling은 표현주의 희곡들을 무대화함으로써 평판을 쌓았는데 그는 대본에서 발견되는 정서적 성질들을 반영하기 위해 광범위한 장치들을 실험하였다. 즉 현금등록기 소리에 맞춘 무용이라든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색조명, 왜곡된 형체 등이였다. 그는 Jessner보다 더욱 절충주의적 이었다. (Oscar, G, Brockett. 앞의 책. 600면)

표현주의 연극의 공연은 필연적으로 창의적인 연출가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러한 연출가는 작가의 내면의 눈을 가지고 볼 수 있는 사람이거나 고전 작품의 경우에 있어서는 현대적인 해석을 가지고 연기, 무대장치, 의상, 조명, 음향 등을 동원하여 그의 비젼을 재현해 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던 것이다. (버나드 휴이트, 앞의 책, 113면)

 

 


Ⅳ. 결 론

 

표현주의는 궁극적으로 어느 때라도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 정신의 한 가지 태도, 일정한 일련의 요인에 맞서는 특정한 한 가지 반응이다. 자기표현, 종교적 열정, 불합리한 것과 비의적인 것에의 탐닉, 아울러 정치적 행동주의와 권위의 전면적인 무시 따위는 오늘날 문화적 상황의 커다란 특징인 것이다. (R. S. Furness. 앞의 책. 125면)

표현주의 연극은 자연주의에 대한 저항과 그 시대의 혼란스러움으로부터 도출된 낙관주의가 뭉쳐져 성립되었지만 무엇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인간 고유의 낭만주의적 경향의 결정체라는 점일 것이다.

비록 표현주의 연극이 "자본주의 사회의 공포 때문에 광기에 사로잡힌 소부르조아지의 무정부 주의적인 양식"(소련 콤 아카데미 문학부. 희곡의 본질과 역사. 김만수 역. 제3문학사. 1990. 171면) 이라는 비판도 받지만 표현주의 연극의 실제적인 모습은 다분히 정치적이고 경향적 성격을 띈다. 다만 표현주의 연극은 진실을 주관적 영역안에서 찾으려 했고 그들이 본 바대로, 즉 개인의 주관성으로 대상을 인식한 대로 표현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작가들은 의식의 흐름이나 현실의 단편적인 면들을 통해 감정의 새로운 결정체에 도달하게 함으로써 관객의 의식 표면속에 담겨진 감정들을 자극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표현주의 작가들은 관습적이며 객관적인 현실의 개념을 깰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발견을 위해 플롯을 무시하고 상상적이며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장면, 기형적이고 과장된 제스처, 꿈과 악몽과 같은 요소들을 중요한 표현 기법으로 선택하였던 것이다.

결국 표현주의 연극은 표현에 있어서 논리적인 분석보다는 직감에 더욱 의존하였으며 각 개인의 주관적 환영에서 진실을 찾았고 그것은 인간의 상상력을 확대시킨 것이었다.

 

Toller의 1920년대 표현주의 연극 'Maan and the Masses'의 한 장면 / 출처 : https://www.pinterest.co.kr/pin/509821620293709010/

 

※ 참 고 문 헌 ·Brockett. Oscar G, History of the Theatre. 5ed. Allyn and Bacon. 1987.
·Brockett. Oscar G, The Theatre An Introduction. 4ed. Holt, 1979.
·Forness. R. S, 표현주의. 김길중역. 서울대 출판부. 1985.
·소련 콤 아카데미 문학부. 희곡의 본질과 역사. 김만수역. 제3문학사. 1990.
·스타니안. J. L. 표현주의 연극과 서사극. 윤광진역. 현암사. 1988.
·크로이든 마가렛. 현대 연극개론. 송혜숙역. 한마당. 1987.
·휴이트 버나드. 현대 연극의 사조. 정진수역. 기린원.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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