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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글/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해석

by Park, Hongjin 2009. 12. 8.

두 부랑자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이 둘은 끊임없이 ‘기다리는 행위’를 하고 있다. 럭키와 포조는 고도를 기다리지 않는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억압과 피억압만의 관계가 존재할 뿐이다. 럭키와 포조는 현실, 그 자체이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앞에 고도는 나타나지 않고 ‘럭키와 포조’(현실)가 나타난다. 희망을 가지지 않은 럭키와 포조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에게 있어서 불안과 공포, 비합리로 휩싸인 세계의 모습, 그 자체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럭키와 포조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에게 있어 절망적인 세계의 모습,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러나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럭키와 포조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계속 고도를 기다린다. 결국 그들에게 나타나는 것은 고도의 전령인 소년 뿐이다. 소년은 때묻지 않음을 의미한다. 절망적 세계의 유일한 희망은 이들 아이들의 손에 달린 것이다. 소년은 고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그래서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또다시 내일 또 내일 고도를 기다리겠지만 이미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고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들이 끊임없이 기다리는 것은 그들의 생의 연장으로서의 방편인 것이다. 기다림을 포기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막에서 포조가 눈이 멀고 럭키가 벙어리가 된 것은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다. 비합리적인 세계에서의 현실적인 생활은 인간을 눈 멀게 하고 벙어리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세계에서 인간이 행해야 할 액션(action)은 ‘기다리는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비극적 테마를 희극적 장치로 보여줌으로써 스타일상의 부조리를 보여주고 있다. 즉 상황의 비극성이 희극성으로, 희극성이 비극성으로 자유롭게 유동적으로 이행되고 있다. 이 극은 또한 논리성이 없다는 것 자체로 논리성을 나타내며 무언극적 요소, 패러독스, 언어의 넌센스, 강한 알레고리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의 기본적 전제는 세계가 부조리하다는 인식이다. 따라서 세계는 완결된 세계로 나타나지 않으며 논리성이 없다. 이 작품의 지배적 분위기는 우울함과 고뇌이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고뇌하고 있다. 단지 우스꽝스럽게 말이다.

절망적 세계의 탈출구를 기다리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결국 고도를 만나지 못하고 현실과 직면하게 된다. 고도는 오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고도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내면적 상황의 외면적 표출, 즉 이 작품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실체를 해체한 존재들이다. 근본적인 선택, 자기실존의 근본적인 상황에 직면한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를 통해 인간의 부조리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의 관통선은 ‘기다림’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행위가 작품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구조상의 당위성은 ‘논리의 비약’이다.

부조리의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부정직하고 무의미한 사회를 비판하는 것으로 ‘풍자’적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근본적 상황을 해부하고 인간의 실존, 그 자체에 대해 탐구해 들어감으로써 근본적인 선택을 유도하고자 하는 측면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경우에 있어서는 이 두가지 측면이 따로 분리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큰 맥락의 이중적 의미개념을 통해 함께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아직도 인간은  고도(godot)를 기다리고  있는가? 대답은 '그렇다' 이다.  살아 숨쉬는 한 인간은 고도를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기다림'을  통해 완결된 하나의 존재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다리지  않는 인간은 결국 죽어  있는 자이다.

그렇다면 고도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고도를 기다려야만 하는가? 고도는 '모든 상징' 이다. 이세상의 어떤 인간도 기다림의 대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는 없다. 고도를  기다림은 당위성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필연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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