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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글/연극

운동(MOVEMENT)이 곧 미학이다!

by Park, Hongjin 2009. 9. 28.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연극 ②
 

   운동(MOVEMENT)이 곧 미학이다!

박 홍 진

  
       우리시대의 연극정신(演劇精神)을 규정짓는 가장 큰 특징은 세속과의 이질감으로부터 어떠한 마찰도 일으키지 않으려는 헛된 노력의 과정-속된 통속적 경향으로써 기존의 유행거리(fashion street)와의 밀착-이며 자본의 논리에 적극적인 순응의 자세를 취하는 무사안일주의-자본의 올바른 경영이 배제된 질 낮은 상업성-이다.

         운동은 전혀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이상(理想)의 발현이며 구체적 실천방안이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연극으로서 간주하고 있는 모든 유형의 극적(劇的) 스펙터클-스포츠 경기나 장터와 같은 유사연극(Para Theatre)적 광경을 포함한-에 미학을 부여하는 논리적 장치이며 행위이다. 왜냐하면 홀로 진행되는 모든 행위의 예술로의 전이(轉移)는 집단적 움직임의 결과이며 산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동일한 이상을 지향하는 집단적 행동에 의미가 부여될 때 그것은 곧 하나의 미학으로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시부족의 집단무(集團舞)나 데모대의 행렬 등은 생활 속에서의 극적 사건의 표출이며 인식 가능한 연극의 확장형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항은 이러한 것들이 운동-화(運動化)를 통하여 예술적으로 읽혀 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기존의 연극현상이 단지 무대(Stage)위에서만의 미학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광범위한 연극의 무한성을 제한하는 것이며 프로시니엄을 차지한 계층의 자기합리에 불과한 자족(自足)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러한 계층은 극장안에서의 이런저런 변형을 실험이라고 생각하는 오류와 착각에 빠져 거듭되는 형식-내용 자체가 곧 형식이 아닌 외형적 변형-의 반복에 그럴 듯한 이름을 붙여 단지 '이것이 연극이다'라고 주입시키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기존의 관행과 습관에 의해 생성된 연극 방법론은 연극하는 이를 길들이고 이어 일반인들을 길들일 뿐이다. 스스로의 내적 필연성에 의해 검증되지 않은 연극 방법론은 미학이 될 수 없다.

         그리이스나 로마의 고전연극이 절제미를 추구했다고 한다면 18, 19세기의 감상주의와 낭만주의 연극은 활력미를 추구하였다. 또한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연극이 사실성에 충실하려 했다면 20세기 초의 비사실주의 연극은 새로운 리얼리티(reality)로서의 왜곡미에 충실하였다. 이렇듯 연극은 끊임없이 이전의 미학을 부정, 또는 거부하면서 그 시대의 연극정신을 새롭게 각색하려 했던 것이다. 물론 과거의 미학을 재생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그것은 과거의 원형(原形)을 그대로 답습하는 차원이 아닌 창조적 수용으로서의 복원이었다. 20세기말에 이르러서는 다양한 실험과 연구의 성과를 보여주듯 그 어느때보다 강렬하게 연극미학이 표출된다. 예를들어 브레히트(Brecht)의 서사극, 리빙시어터(Living Theatre)나 오픈시어터(Open Theatre) 같은 집단 작업, 그로토프스키(Grotowski)의 가난한 연극,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의 이미지 연극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연극미학이 탄생하였고 소멸해 갔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많은 변화와 생성.소멸의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되어야 할 점은 변화하는 연극의 현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현상 속에 숨어있는 연극운동인 것이다. 즉 어떤 시대, 어떤 사회의 연극에 있어서도 단지 무대위에서의 단발마적인 공연의 모습에서 미학이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연은 물론 가장 중요한 실험의 결과이다. 하지만 공연은 기본적으로 연극운동의 적확한 포맷(format)아래 시나브로 이루어지는 성과물일 때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과학자는 매일매일 실험을 한다. 그리고 그들 실험의 결과를 눈에 보이도록 가시화한다. 실험의 결과가 보여지지 않을 때 그 실험은 실패한 것이다. 연극에 있어서의 실험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연극미학은 연극운동과 뿌리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이전의 정(正)에 반(反)하여 새로운 합(合)을 구하고자 하는 것은 연극행위의 당위성과 보편성, 그리고 방법론의 확신으로부터 열망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쉽게 잊어 버리고 마는 단순한 진리-연극은 무엇인가, 연극을 왜 하는가, 어떠한 연극을 해야만 하는가-에 대하여 답을 구하는 과정, 그것이 바로 연극운동이며 '연극하는 방법을 연극하는 것'이 바로 실험이다. '배우는 법을 배우는 것이 공부(工夫)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내용과 형식의 단일화를 통한 매체지향적 속성을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공연양식의 창조를 가능케 하는 실험정신이다. 연극하는 이의 지상과제는 정기적인 요식행위가 아니라 끊임없이 실험을 통하여 자기를 극대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자기의 극대화로써 연극하기는 필연적으로 내적 결과물의 외부적 표출형태로써 나타나게 된다. 내부 신호, 혹은 내부 메시지를 외부신호로 변형시키는 것이야말로 자기표현의 일단계인 것이다. 연극의 역사가 말해주듯 연극운동의 최전선에는 항상 미학이 배치되어 있으며 결국 미학은 인간의 자아(自我)와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한번 이야기하지만 '연극하는 방법을 연극하는 것' 이 실험이고 실험이야말로 극단의 존재이유이다. 극단은 실험을 통해 연극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새롭게 제시해야 하며 극단 속의 인물들과 극단 밖의 인물들이 서로 교환되어 역할이 수행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정기적인 공연만이 극단을 정당화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테오도르 생크(Theodore Shank)는 "연극이 독자적 예술작품으로 여러 구성요소가 결합하여 단순히 각 부분의 총합(總合)이상의 전체를 형성한다"는 연극미학 이론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러한 이론의 기본적인 전제는 연극은 연극이다, 따라서 연극은 연극으로써 이해되고 실천되어져야 한다는 서양식 관점의 연극 이론이다. 다시말하자면 생크가 이야기하는 연극미학은 연극의 고정적 한계를 가지고 연극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 할 수도 있다. '연극은 연극이다. 그러나 연극은 연극이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연극은 생활과 예술의 경계선을 없애려는 시도-리빙시어터의 모토인-일 수도 있으며 하나의 형식으로써 인식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의 창조-환경연극(Environmental Theatre)의 모토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극미학이 단순히 극장안에서의 그것도 프로시니엄에서의 중단없는 변형으로만 논의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우리는 연극미학의 논의 자체를 연극의 근본적인 정의 자체로 돌려 놓아야한다.

        연극의 시작은 안(內)이 아니라 밖(外)이다. 폐쇄된 극장내부에서가 아니라 열린 공간으로서의 야외에서이다. 사람들과의 거리유지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틈-에서이다. 이러던 것이 계급의 상하구별에 의하여 대표 계급의 상업적 특성과 맞물려 계급미학을 탄생시켰다. 이것은 아직까지도 우리의 연극을 지배하고 있으며 급기야 후기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와서는 상업미학이 곧 연극미학처럼 도색되어지고 있다. 운동으로서의 연극은 빛바랜 초상처럼 낡아빠진 유물이 되었으며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동시에 연극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은 우문(愚問)으로 밀려나고 먹고 살기 위한 연극은 현답(賢答)으로 부상한다. 먹고 살기 위해 기존연극에 대한 제고(諸苦)없이 관습적으로 연극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발생하는 것이 바로 지겹고 힘든 연극작업이라는 탄식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예술가들은 끊임없이 연극미학을 창조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수단을 강구하고 있으며 때때로 새로운 무대시각화에 성공하기도 한다. 단, 문제는 이러한 성공이 결코 혁명적 사고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철저하게 개인성에 입각한 연극작업의 결과인 것이다. 연극은 공동작업-겉으로만 공동작업의 모습을 한 어느 한 개인의 원맨쇼가 아닌-을 통해 공동의 이상과 재능을 실현시켜 나가는 것이다. 삶의 전면적인 변혁을 추구하는 것이며 인간존재 전체의 변혁을 모색하는 것이다. 따라서 연극은 대다수 사람들의 체험속에 깊이 관여하여야 하며 그것은 간접체험이 아닌 직접체험-실제 사건-이 되어야 한다. 어떠한 간접체험도 감각 이상의 느낌을 창조하지는 않는다. 완벽한 수용상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에서 내가 행위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수세기동안 인간을 연극외(外)의 존재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것은 이것과 저것의 차별화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관계의 청산이다.  그래서 수많은 관계의 끈을 보지 못하는 어둠이 우리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것이다. 연극은 이세상의 어느 것하고도 관계가 있다. 단지 그것을 못 보고 있을 뿐이다.

         다가오는 21세기에는 아마도 컴퓨터가 주도하는 문화가 형성될 것이다. 아니 지금 벌써 컴퓨터 문화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최근 PC통신을 통한 연극정보의 교류는 컴퓨터의 보급정도와 비례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더욱이 인터넷을 통한 방대한 양의 해외 연극정보까지 고려한다면 그 파급효과는 실로 엄청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정보화시대를 거쳐 정보의 선점시대로 치달으며 정보의 미학화(美學化)가 급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컴퓨터는 우리에게 미래연극의 징후를 암시하고 있다. 또한 연극운동의 본보기로써 가상공간 속에서의 만남을 통한 새로운 연극미학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누구나 컴퓨터를 통해 연극에 참여할 수 있으며 동시에 스스로 제작자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상연극(Virtual Theatre)은 미래연극의 선두에 서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마우스를 클릭(click)하기만 하면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연극환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사이버 스페이스(syber space) 속에서의 연극의 실현은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할 뿐 아니라 많은 편견과 선입관을 제거해 주기도 한다. 우리는 전세계적인 네트워크(network)의 필요성을 감지해야만 한다. 그것은 연극운동의 21세기적인 표현이며 방법론이다. 대륙과 대륙을 잇는 케이블을 통해 우리는 예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안방에서의 다국적 연극만들기가 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찾아 오기만을 기다렸던 과거의 연극행위가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이나 머드 게임은 단순한 오락이상의 함축적 의미를 띠고 있다. 관객이 스스로 생각하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주체로써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현재는 컴퓨터 오락 이상의 가치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지만 그러한 새로운 매체의 속성은 새로운 연극하기의 단초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 대중성은 예술에서보다 아직 예술이 되지 못한 게임에서 보다 명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연극, 그것은 스스로가 주체로써 행사력을 발휘하는 연극이다. 기존의 연극미학이 운동의 성격을 상실하고 소수의 품안에서 잉태되어지는 엘리트 지상주의로 일관할 때 대중은 연극에서보다 컴퓨터 오락에서 더욱 자신의 연극적 재능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누가 감히 날로 진보되어 가고 있는 컴퓨터 오락을 연극이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겠는가? 머지않아 컴퓨터는 가상의 배우, 스탭, 세트, 그리고 관객까지도 프로그램화하여 가상의 현실을 창조할 것이다. 물론 가상의 현실은 곧 현실이 되어 버린다.

         관객은 선택해야만 한다. 이 공연을 볼 것인가, 말 것인가? 관객의 선택은 자유이다. 보던 말던 그것은 관객 마음이다. 찾아 오기만을 기대하는 안일한 연극에서는 고작 포스터를 붙이고 거리에 나와 전단을 나누어 주고 신문이나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언론 플레이-자사(自社)의 연극을 홍보하는 정도의 필연성밖에는 갖추지 못하였다. 공연을 통해 뚜렷하게 추구하는 바가 없으며 있다고 해도 치열하지 못하다. 항상 제한된 관객과의 조우에 만족하며 그러한 관객은 불특정 다수가 아닌 특정한 소수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같은 행위를 되풀이 하고 있다. 아무런 반성없이. 연극은 찾아 오기만을 기대하는 피동성에서 이제는 찾아 가는 능동성으로 일대 전환을 모색하여야만 한다. 찾아 가는 연극은 연극 행위의 필연성을 극대화 시키는 일이며 연극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의식(儀式)인 것이다.

        새로운 연극운동은 관객을 찾아 나서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찾아 가는 연극은 환상이 아니다. 또한 감동을 이끌어 내려는 어떠한 작위(作爲)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현실 속의 하나의 가정(假定)으로써 제시되는 기회의 모습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재능을 되찾게 하기 위한 분위기의 창조이다.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여러형태의 미적(美的) 조건과 규범으로부터 박탈당하고 있는 예술재능을 되찾기 위한 운동이다. 스스로의 자발적인 참여와 인식의 전환을 통해서 자기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표현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연극고유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다수가 주인이 되는 새로운 연극미학의 방법론을 찾아 가는 연극운동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연극의 역사는 연출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연극의 역사는 소수의 카리스마에 의해 대변되어 왔다. 지금 이시간도.

        이제 연극운동의 키를 쥐고 있는 연출의 역사를 살펴보도록 하자.

 
        부록 - 연출의 역사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사실은 굳이 변증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원칙일 것이다. 그 옛날 소아시아 에페소스 사람, 헤라클레이토스(기원전 540년경-480년)가 "모든 것은 흐른다"고 생각한 이래 인간은 정말 흐르는 강물처럼 자신을 변화시켜 왔다.

        연극에 있어서도 특히 연출에 있어서 이러한 변화는 어쩔 수 없는 역사의 필연이고 이제 우리는 그러한 변화의 원동력이 무엇이고 무엇이 그러한 변화를 가져오게 했는지를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당면하게 된 것이다. 즉, 연출의 역사를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그러한 역사변화의 매개변수를 찾고 그로부터 앞으로의 연출의 방향성을 구축해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오늘날,똑같은 기본관점을 보존하는 것은 더이상 가능하지 않다. 더구나 최근의 진보는 연출의 미적 조건에 대한 쟁점, 즉 한 연극의 지휘자가 작업을 위해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개인적 창조의 역할에 대한 쟁점 한가운데로 단번에 우리를 끌어 들인다."

 

        19세기 말 '연출가'라는 지극히 새로운 유형의 인물이 부상되기 전에는 우리가 흔히 연출이라고 공유하고 있는 것들-무대 위에 통일성을 부여한다거나 종합과 해석 등-에 대한 하나의 특별한 형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다른 이름과 형태로서 그러한 역할이 있어 왔고 그것은 암묵적으로 연출의 기능을 수행해 온 것이다. 연출의 기원을 역사적 선례에서 찾아 보자면 단지 연극의 기원을 역사적으로 추적해 나가보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왜 연출이라는 것이 그러한 형태로 존재해야만 했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일 것이다.

        1874년 5월 1일 마이닝겐(Meiningen)의 공작이 그의 알려지지 않은 순회극단을 베를린에 데려와 그의 연극의 성과를 보여준 날을 연출사의 특별한 날로써 다시말해 연출이 등장하게 되는 하나의 신호탄으로서 연출사는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물론 그의 작업은 앙트안느(Antoine)와 스타니슬라브스키(Stanislavski)를 고무시켜 현대적 의미의 연출개념의 출현을 예고한 것이었으며 리 시몬슨(Lee Simonson)의 표현을 빌리자면 "극의 매 순간에 완전한 지휘를 통하여 공연 전체를 시각화하고 해석에 있어서 통일성을 부여할 수 있는 연출가의 필요성, 즉 조명.의상.분장.무대장치의 세세한 부분을 해석하는 기준, 공연전에 필요한 장대한 계획과 조기화의 단계만이 '연극의 본질'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의 진정한 의미는 연출의 시작이라는 문제보다는 근대적 의미의 연출가의 등장이라는 의미에서 가치를 부여 받는 것이고 실제적으로 연출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는 인류의 탄생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문화적 현상으로서의 놀이의 형태는 어느 민족,어느 나라에서나 찾아 볼 수 있으며 놀이와 제의의 연계성 또한 주술이라는 인간의 기원의식(祈願儀式)에 그 뿌리를 두고 일반화 되어 있다. 연극은 이러한 문화인류학적 시원으로부터 탄생의 당위성과 보편타당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 당시의 연극은 생활 그 자체였다. 연극의 발생이 아리스토틀(Aristotle)이 얘기하는 것처럼 모방본능에서 기인했건, 혹은 해틀린(Theodore W. Hatlen)의 말처럼 자기 확대의 욕망에서 비롯됬건 태초에 말씀이 있기 전에 이미 하나의 '행위'가 있었던 것이며 그것은 단순한 재현으로서보다는 현실과의 동일화로서 자연과 우주의 성스러운 사건 자체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성스러운 행사는-놀이로서의-연기(演技)라는 형식을 통해 표출되었으며 아직 개화되지 못한 미개인들에게 있어서는 정치력을 확보한 행사의 주관자는 형식의 원시성에 나름대로의 힘을 불어 넣는 그들 지도자이며 교사이며 기술자이며 뛰어난 정치가였던 것이다. 당연히 행사의 주관자는 모두 이해하고 이해될 수 있고 카리스마적으로 표현하자면 더 복종적인 일반적인 행사형식의 룰(rule)이 필요했고 그러한 룰은 현대적 의미의 연출이라는 개념아래 흡수.조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연출되어진 성스러운 행사는 행위되어진 어떤 것으로서 하나의 형식을 가지며 그러한 성스러운 행사의 효과는 "표상화되어 보여지는 데 있다기보다는 실제로 재생되는 데 있다. 따라서 의식의 기능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그 의식의 신봉자들에게 성스러운 사건 자체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의식이란 모방적 이라기보다는 방편적(methectic)인 것이다. 그러한 방편이 의식 행위를 도와 현실화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연출의 시작을 위의 논의에서 이야기 되어진 제의놀이의 형식성 부여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즉, 모든 미개한 사회에서 미개한 형태의 통치기구 내지 정부를 갖기 위한 행사의 일환으로, 그리고 자연의 신비 그 절대성에 대한 경외감, 자연을 통한 '나'의 기원의 표시로서의 행사에 대한 형식성 부여에서 그 모태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통합된 전체로서의 놀이의 양태는 인류의 발전과 변화와 더불어 소위 '이것은 이것, 저것은 저것'이라는 미세한 분류의 메카니즘적 정신상태에 접어들게 된다. 이것은 바로 시대의 변화와 동일선상에서 진행되는 필연적 과정으로서 연극연출에 있어서도 다양한 형태의 역할과 기능을 야기시키는 핵심적 단서로 제공되는 것이다. 연출은 성스러운 행사의 집행자에서 이제 연극이라는 무대위의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인간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과 신에 의한 우주생성 비밀사이의 관계에 대한 표현이 보다 명확하고 이해가능한 상태로 진전되어감에 따라 인간 그룹의 삶과 이를 둘러싸고 지배하는 불가사의한 힘들 사이의 영속적인 관계가 맺어지게 되는데 그것은 선택된 장소, 즉 평범한 영역으로부터 분리된 대지의 어떤 부분을 확정함에 의해 가능하게 된다. 이러한 공간의 확정은 제의식(祭儀式)이 제도화된다는 것을 상징하며 집행자들간의 역할의 분리가 더욱 뚜렷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쪽에서는 의식의 집행자가 있기 마련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신도들의 모임이 있게 되는 것이다. 종교행위는 각 참석자에게 있어서 내면생활과 신성과의 교감의 양식이 될 뿐아니라 사회적 공동체의 경험이며 이를 통한 문화적 훈련이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참석자들에게 속한 참여형태와 의식 집행의 리더(leader)인 사제의 형태 사이의 대비는 점점 더 뚜렷해 졌으며 이것이 극적으로 구성되어져 성역으로부터 대중적 장소로 옮겨지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바꿔말하면 연출은 이제 신의 영역에서 대중의 영역으로 자리를 옮겨 공연의 세속화-바라보고 듣는다는 즐거움을 목표로 삼는, 하나의 공연형태로 표현되는 종교의식의 순간-에 대한 반응을 생산해내게 되는 것이다.

        공연에 참여하는 사람들, 즉 행위자와 관객사이의 대면-서로 바라봄-을 주선하기 위해 원(圓)이 깨어지는 순간 연출은 연극에 있어서의 놀이적 요소를 상상적 현실의 실재화라는 측면에 머물게 한다. 연극은 배우에 의한 모방-어떠한 의미에서건-의 실현에만 적용되게 되는 것이다. 퍼거슨(Furgusson)이 지적하듯이, 그리스 연극의 실습은 신화와 의식(儀式)과 도시 생활방식의 원근법에 의존한다. 이 원근법은 놀랄만한 반응의 양식을 만들어 낸다.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그리스 시인들의 희곡은 단지 실행의 의미였다. "고대 극작은 사건이었다. 예술 그 자체요, 광경이 아니었다."고 아피아(Appia)는 말한다. 종교의식과 도시의 자존심은 극적 연기와 디오니서스(Dionysus)에 대한 연중경배를 통해 공동사회를 구성함으로써 지켜나갔던 것이다. 이 때 연출이란 단지 "야외를 위해,광대한 공간을 채우기 위해, 또 지적이지만 민감하며 재빠르게 야유를 퍼붓고 휘파람을 불고 모든 자극에 반응을 보이는 대중의 소란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으로 그 성격을 도출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디다스칼로스(Didaskalos:선생이란 의미)라는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뭔가를 가르치고 함께 연습하며 시대의상이나 무대규칙을 창조하는 사람으로서의 연출가의 특성은 점점 소멸되어가는 단편적 사회의 가치부여자로써 기능했을 것이며 연출은 그러한 기능의 실천형태였던 것이다.

        "4세기부터 연속되는 동족간의 전쟁, 경제적 파멸, 아테네에서의 민주주의의 쇠진을 불러오는 마케도니아의 정복과 더불어 지중해의 동부지역에서는 세계적 문화,부르조아적이고 군주적인 사회형태가 발전하게 된다." 헬레니즘 세계의 도래는 연극에 있어서 물질적 구조편성과 그 여파로 인한 극작술의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합창대의 경비(經費)문제로 인한 서정성의 위축은 비극형태의 퇴보를 가속시키고 희극은 정치적 풍자를 포기하면서 인간 심성의 고찰쪽으로 방향을 돌리게 한다. 헬레니즘을 정복한 로마는 씩씩하고도 투박한 가치라는 이상을 스스로에게 형성시켰으며 모든 종류의 흥행물을 포괄하는 놀이로써 다양한 종류의 종교적 축제가 집행되었다. 이 시대의 연출은 단지 피흘리는 검투사에 환호하는 대중의 열기 속으로 물러나 있던 것이다.

        기독교의 진군나팔 소리는 그리스.로마시대의 정치적 권력으로 말미암아 제도화된 십자가를 민중들에게 비추었다. 서서히 기독교라는 종교도시가 유럽의 폐허속에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기독교 의식에서 유래한 중세극은 중세사회의 가치들을-기독교적 종교가치들-창출 내지 강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제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술적 연출의 해석이 아니라 기독교 교리와 신념을 위해 만들어 지는 연극이었다. 그러한 연극의 동기가 되는 공동체적 신념의 행위라는 점이 이시대 연출의 핵심적 단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속의 사건들을 믿음이라는 토대아래 대중들에게 극화하여 보여주기 위해서 더 정교하고 복잡한, 더 풍부한 시청각적 전시 효과가 요청되었으며 이러한 요청은 자연 기계조종의 임무를 조직적으로 수행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휴머니즘의 도래는 더이상 교회가 이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하였으며 모든 것의 척도를 인간정신으로 대체하였고 신학을 벗어나는 새로운 도덕을 만들고자 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연극은 상식적인 인간 삶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였으며 윤리학의 허용.상상력의 매력.감수성에 대한 동경을 정당화하였고 시에 대한 심리분석의 장(場)을 열어 놓았다. 또한 인쇄된 서적의 보급으로 문학의 위치가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며 이것은 다른 종류의 예술형태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연극 역시 문학과의 연계성 아래에서 정의되었으며 무대는 문학창작의 부수물이 되었던 것이다. 연출은 연극속에서가 아니라 문학아래에서 그 존립여부를 확인받았으며 문학에 대한 미학적 판단이 연출의 결정요소가 되었던 것이다.

 

        사회환경이 점점 분업화되고 다양화되어 가는 사회변동기의 한가운데에서도 연극은 연극예술의 이상적인 조건을 모색하려고 노력하였다. 내적인 통일성은 더이상 가능하지 않았지만 어떤 대안적인 결합이 이질적인 사회의 다양다기(多樣多技)한 기술을 한데 묶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역사적 연속선상에서 연극의 네가지 이상(理想)들이 촉매제로 출현하게 된다. 그것은 르네상스의 실험정신으로부터 시각적인 무대의 개념이 나왔으며, 둘째 18세기 이성주의와 19세기 결정론으로부터 재현무대가 출현한 것, 셋째 20세기의 주관에서 유래된 표현주의 무대와 상대주의로부터의 극장주의 무대가 탄생한 것, 넷째 앞서의 바탕하에 이루어진 실험무대가 그것이다. 연출은 앙트안느, 아피아, 크레이그(Craig), 라인하르트(Reinhardt), 스타니슬라브스키, 마이어홀드(Meyerhold), 코뽀(Copeau)등으로 이어지는 연출가의 등장과 함께 연극예술의 심장으로서 이러한 양식들에 의거 도처에서 승전보를 울렸으며 지금도 그러한 승전보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연출이라는 개념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동일한 것이며 그 속에서 그 의미를 가지는 것이며 그 시대,그 상황의 전체성을 연극에 투영시켜 보이는 매우 정교한 예술방법론이라는 것이다.

 

   다음의 책들을 참고하였습니다.

* <연출사> 로베르 삐냐르 著  박혜경 譯  
  -탐구당- 1987刊  

* <호모 루덴스> J.호이징하 著  김윤수 譯  
  -까치- 1989刊  

* <DIRECTORS ON DIRECTING> Toby Cole & Helen Krich Chinoy 編著  
  -THE BOBBS-MERRILL COMPANY- 1963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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