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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글/연극

박탄고프와 환상적 사실주의

by Park, Hongjin 2011. 4. 2.

오랫만에 박탄고프(Vakhangov)를 들여다봤다.
박탄고프는 네미로비치 단첸코, 스타니슬라브스키, 메이어홀드, 타이로프 등과 같이 러시아 연극을 세계적으로 알린 연출가 중 하나로 '환상적 사실주의'(fantastic realism)의 주창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사실주의와 메이어홀드의 구성주의를 혼합하였다하여 박탄고프의 연극을 환상적 사실주의 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은 박탄고프의 작품이 스타니슬라브스키와 메이어홀드의 단순한 혼합이 아니라 둘의 시스템을 융합하여 새로운 표현형식을 추구하였다는 점이다. 즉, 내면적 진실이 만들어 내는 자연스런 현실에 최대한 상상력을 가미하여 사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작품 세계를 추구했던 것이다.

"극장에서는 자연주의도 사실주의도 없으며, 환상적 사실주의만 있을 뿐입니다. 믿을 수 있도록 찾아진 연극적 방법들은 오히려 작가들에게 무대에서의 진실한 삶을 제공하는 모티브가 됩니다. 그러한 방법들은 훈련될 수 있을 것이며, 그리하여 형식의 창조가 필요하고 무한한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바로 이것이 내가 환상적 사실주의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박탄고프가 주장하고 있는 '환상적 사실주의'란 무대에서의 감정은 진실하지만, 표현방법은 비사실적이고, 삶을 반영하는 희곡으로부터 공연형식은 연극적으로 상상력이 충만한 형태라는 의미이다."

                                                                                                 - [박탄고프] 中 (박상하 지음)

 

출처 : 알라딘


사실 난 박탄고프에 대해 심도있게 공부하지 않은 터라 그에 관련된 번역물이나 러시아 유학파에 의존할 뿐이다. 그런데 박탄고프를 좀 깊게 공부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를 대단히 아름다운 연출가로 언급한다. 보통 연출가를 언급할때 뛰어나다든가, 천재라든가, 혹은 스마트하다든가 뭐 이런 표현을 주로 하지 않는가. 근데 아름답다? 도대체 뭐가 그를 아름다운 연출가로 불리게 하는 걸까? 그리고 연출가에게 있어서 아름답다라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 걸까?

해답은 연극에 있어서의 연출과 배우의 관계성, 바로 거기에 있는 듯 하다. 그는 연출가이면서 동시에 연기교육자였는데, 그와 작업을 같이 했던 배우는 그가 연기 뿐만 아니라 삶의 도덕성을 대단히 중요시 여겨 연기를 가르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삶의 양식 마저 가르쳤다는 것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연극을 통해 삶의 방식을 이야기 했던 것이다. 이 말은 삶과 예술을 동일한 지향점에 의해 추구했다는 것인데, 우리가 흔히 고민하는 '예술가의 삶과 작품은 일치해야 하는가 아닌가?'의 문제에 있어 명확한 해답을 내리고 작업하기 때문에 그러한 일관된 철학이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즉, 예술가의 실제 삶과 그의 예술이 추구하는 주제의식이 모순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닐까?

요즘 들어 연극(예술)의 개념이 참으로 애매하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시대를 관통하는 공연 문화의 흐름이 잘 읽혀지지 않는다. 엊그제 연극평론가협회에서 주최한 '우리 시대의 비평문화'라는 좌담회에서도 난 평론가들이 공연을 보고 공연비평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좀 더 포괄적인 의미에서 우리 시대의 공연 문화를 진단하고 분석해서 대중에게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시켜 줄 필요성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 왜냐하면 예술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하고 있고 많이 변해서 작품의 완성도를 판단하는 기준이 애매모호해 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천재라든가 뛰어난 예술가가 필요한 시대는 아니라고 본다. 그러기엔 벌써 너무 많은 정보가 범람하고 있고 표현 형식면에 있어서도 다방면에 걸쳐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내고 있다. 이젠 뭘 해도 의도하지 않은 벤칭마킹이요, 시뮬라시옹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박탄코프는 참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연극 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엄격한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점점 연극이 기술적인 작업으로 변모해 가고 있을때 연극이 정신적인 창조 작업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외적 무대 형태에 대한 내적 동기"

에 대해 현대 연극은 좀 더 심사숙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거기에 오늘날 연극 예술의 새로운 개념이 숨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박탄고프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은 분은 [박탄고프] (박상하 지음, 동인출판사)를 먼저 읽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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