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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글/대본

오케스트라

by Park, Hongjin 2009. 11. 9.

오케스트라

(Orchestra)

박 홍 진 作

막이 오르면 무대 위에 교향악단이 배치되어 있다.

연주자끼리 소곤소곤 대기도 하고 뭔가 깊은 사색에 빠져 있는가 하면 연주곡목에 대해 의논을 나누기도 한다.

트럼펫,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등등 해서 전연주자들이 사뭇 엄숙한 태도로 연주태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실은 교향악단이라고 해야 무대 위의 연주자들 자신들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 관객이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다시말해 이들은 침묵의 교향악단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연주자들 정면에는 극중 관객이 위치하고 있다. 조용히 사뭇 긴장된 모습으로 연주가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다.

이윽고 지휘자가 등장하면 전연주자들은 모든 행동을 멈추고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지휘자는 극중관객에게 인사를 하고 극중관객은 답례한다. 이제 지휘자는 지휘를 하고 연주자들은 연주를 하기 시작한다. 연주곡목은 “유모레스크”이다. 연주 중간중간에 독주내지는 협주가 이루어진다. 연주가 계속되어 감에 따라 연주자 및 지휘자, 극중관객까지도 음악에 심취해간다. 연주자들은 자신의 연주에, 지휘자는 자신의 지휘에, 극중관객은 이들이 만들어 내는 화음에 깊이 빠져 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연주자와 청중의 호흡이 가빠지고 발작적이 된다. 이러한 사태를 어떻게 진정시킬 것인가? 어디선가 귀청이 째질듯한 호루라기 소리가 두 세번 반복되어 울린다. 무대 위의 모든 인물은 즉시 정지상태가 되어 버린다. 위압적인 힘이 느껴지는 의사차림의 인물이 등장한다.

의사 : 사태의 심각함은 분명하고 그래서 저는 고민에 빠져 듭니다. 그것은 일종의 인간에 대한 갈등이자 고뇌입니다.

무너지는(흐트러지는) 무대 위의 인물들.

입가에 미소를 띄우다가 서서히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한다. 이전의 상황으로 돌변해 버린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의사를 사이에 두고 나팔부대를 만들어 몰고 다닌다. 도망치듯 사라지는 의사.

지휘자와 연주자들 사이의 무언의 대화. 형체를 알아 보기 힘든 일단의 무리들이 등장하여 무대 위의 인물들을 덮친다. 하나씩 하나씩 쓰러지고 무릎 끓는다. 간헐적으로 대두되는 신음소리, 비명소리.

피아노 : 피,피,피.....

트럼펫 : 팡,팡,팡.....

바이올린 : 낑,낑,낑.....

드럼 : 따,따,따.....

각 연주자들은 각자 자신의 악기 소리를 낸다. 일단의 무리들은 한시름 놓으며 자신들이 한 짓을 대견스러워하며 서로 낄낄거리고 담배피우고 농담 등의 짓거리를 한다. 이때 서서히 지휘자가 지휘를 다시 시작하고 지휘에 맞춰 연주가 시작된다. 일단의 무리들이 제지한다. 그러나 연주자들은 끝까지 버틴다. 오히려 더욱 기세등등하다. 연주자들의 힘에 밀려 무리들 사라진다. 환호성. 다시 재정비되는 연주단. 지휘에 맞춰 연주하기 시작한다. 연주곡목은 “환희의 찬가”이다. 연주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곡이 끝날 즈음부터 연주자가 차례로 쓰러진다. 환희의 모습이다. 마지막 연주자가 곡을 마무리하고 쓰러진 다음 지휘자는 청중에게 답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청중은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 그러다가 숨이 막혀 죽는다.

의사가 등장한다.

의사 : (무대를 둘러보고) 고민은 해결됬습니다. 이제 갈등과 고뇌는 없습니다. 힘들여 머리를 쥐어 뜯을 필요도 없습니다.

무대 밖으로 나간다. 이때 갑자기 쓰러져 있던 연주자들이 벌떡 일어나서 의사를 덮친다. 목을 졸라 죽인다. 의사의 정상적인 비명소리. 청중은 이미 오래 전에 잠들어 있다. 무대 위가 조용해지자 청중은 잠에서 깨어나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선다. 청중은 극장 밖으로 퇴장하고 동시에 막이 내린다. 일단의 무리들이 막을 내리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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