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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글/소설 Nk

NK 1.해킹(1)

by Park, Hongjin 2010. 2. 22.

2014년. 서울. 어둠 속에 엉겨있는 희뿌연 스모그 사이로 육중한 빌딩들이 불빛을 깜박이며 외로운 등대처럼 서있었다. “타타타닥” 멀리서부터 빌딩들 사이를 뚫고 경찰 헬리콥터가 서서히 가까워 오더니 시청 앞 상공을 선회했다. 먹이를 노리는 흰머리 독수리의 눈빛처럼 헬리콥터의 탐색등은 푸른 불빛을 번쩍이며 창공의 어둠을 갈랐다.

성난 군중들이 시청 앞 광장을 꽉 메웠다. 용산역에서 시작된 시위대는 가두행진을 할수록 그 수가 점점 불어나서 시청 앞에 이르자 몇 만으로 늘어났던 것이다. 나이 어린 학생들부터 중장년층까지 남녀노소가 뒤엉켜 있었다. 여기저기서 정권 퇴진을 외치는 구호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고 다들 ‘KSI 정권 퇴진’이라고 쓰여진 피켓을 높이 치켜 들었다.

6년 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 시위 이후로 이렇게 대규모 시위가 열리기는 근래들어 처음이었다. 현 정부의 거듭된 경제 정책 실패와 언론 통제, 그리고 국민이 반대하는 국책사업의 강행은 국민의 분노와 저항을 불러왔다.

시위대의 최종 목적지는 청와대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정책을 반대하고 있다고 대통령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당신을 찍은 손으로 당신을 권좌에서 끌어 내리기 전에 국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달라는 호소였던 것이다.

광화문 사거리에 시위대를 저지하기 위해 경찰의 바리케이드가 이중삼중 설치됐다. 경찰은 여차하면 폭동 진압용 신경가스를 살포할 태세였다. 효과가 일시적이며 인체에 해롭지 않게 중화되어 사용된다고는 하지만 신경가스는 순간 질식과 두통을 유발하는 유기 인산 화합물계 독가스의 일종이었다. 현 정부는 거듭되는 시위에 경찰들의 부상이 속출하자 시위를 근절시키겠다는 명분으로 지난해 시위 진압시 신경가스를 사용할 수 있다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강력하게 개정했다. 물론 이러한 조치는 시위를 근절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확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뿐였다.

광화문으로 진출하려는 시위대와 경찰 간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일촉즉발의 대치상황! 시위대의 선두가 경찰의 바리케이드를 뚫고 나가려고 하자 경찰은 시민들을 방패로 내려 찍고 단봉을 휘둘렀다. 경찰이 휘두른 단봉에 얻어 맞아 시민들의 머리에서 시뻘건 피방울이 용수철처럼 튀었다. 격분한 시위대는 경찰의 폭력진압에 맞서 쇠파이프와 각목으로 경찰의 방패를 내려쳤다. 걷잡을 수 없는 시위대의 기세에 경찰이 서서히 뒤로 밀리기 시작하자 시위대는 북을 쳐대며 환호성을 질렀다. 반면 1차 방어선이 무너지자 경찰은 일사불란하게 2차 방어선 뒤로 물러나 일제히 방독면을 착용했다. 동시에 상공을 선회하던 헬리콥터에서 시위대를 향해 신경가스가 살포됐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구토를 하며 쓰러졌고 시위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서로 부딪히고 뛰어가고 발에 걸려 넘어지고, 경찰에게 더욱 사납게 달겨들어 드잡이질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힘에 부쳤다. 그 많던 시위 인원은 현격히 줄어들었다.

점차 시간이 흐르자 신경가스로 인해 둔해진 사람들의 움직임이 마치 미로 속을 헤매는 것 같이 보였다. 눈물과 콧물, 침으로 뒤범벅이 된 얼굴은 의식이 증발된 채 탈출구를 찾지 못한 파멸의 형상만이 남아 있었다.

시위를 포기한 자들에 한해 처방 주사나 약을 배포한다는 경찰의 안내 방송이 확성기를 통해 들려왔다. 고통을 참지 못한 사람들은 시위를 포기하고 경찰에게 약을 배포받았다. 유령의 아가리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힘없는 영혼들의 자화상처럼...

검은 하늘을 뒤덮은 흰색 가스 연기가 밤안개처럼 도시를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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