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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글/소설 은하수

은하수 1.까치울음소리

by Park, Hongjin 2009. 10. 26.

모놀로그

'은 하 수'

부제 : 아버지의 선물

 박 홍 진 作

 

1. 까치울음소리

 

아침 햇살이 참 따스합니다. 또 하루가 밝았군요. 해는 여전히 서쪽에서 떳다가 동쪽으로 질 겁니다. 사람들의 바쁜 일상 또한 계속될 거구요. 길 건너편 빌딩 안으로 지금 막 들어가는 남자를 보니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드네요. 단정한 옷차림에 온화한 미소, 게다가 성큼성큼 활기차게 내딛는 모습이 아주 행복해 보입니다. 분명히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빵과 우유로 가볍게 아침을 때우고 난 뒤 사랑스런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산뜻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을 겁니다. 어떤 때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로봇처럼 무미건조하게 보일때도 있지만 오늘 만큼은 모든 사람들이 아주 다정다감해 보입니다.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볼 때처럼요.

"깍깍.”

까치울음소리가 들리네요. 분명 환청은 아닌데... 요즘에도 까치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니 참 놀랍습니다.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도시를 점령한 뒤로 부터는 까치를 보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근데 비둘기가 왜 평화의 상징인지 모르겠어요. 아무데나 똥만 쏴 놓는데 말예요. 공원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이라도 먹고 계셔 보세요. 어느 순간 아이스크림 위에 비둘기 똥이 '툭'하고 떨어질테니까요. 온통 비둘기 똥 천지예요. 아마도 사람들이 먹이를 너무 많이 줘서 배부른 비둘기가 되서 그럴 거예요. 사람과 동물 간에는 적당한 긴장감이 있어야 되는데 비둘기들은 너무 겁이 없어요. 만약 외나무다리에서 사람과 비둘기가 만난다면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거예요.

"너 사람이야? 나 비둘기야! 어서 비키지 못해."

사람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 비켜 서고 비둘기는 사람 앞을 위세당당하게 지나갈 겁니다. 이게 바로 평화의 상징으로 얻는 비둘기의 특권이라는 거죠. 그나저나 아침에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온다고 하던데...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길 모양이네요. 사실 주의깊게 들어보면 누구든지 곧 까치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항상 어디선가 조용히 울고 있거든요.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 뿐이죠.

누군가 쓰레기통 속에 신문을 쳐박아 놨는데 그걸 좀 봐야 겠군요. 항상 그렇듯이 정치면, 사회면, 경제면은 그냥 지나치고 스포츠면하고 연예면을 좀 볼까요. 문화면도 괜찮죠. 이거였군요! 그래요, 바로 이거였어요! 까치울음소리가 제게 들린 이유가요. 제 얼굴이 신문에 대문짝하게 났어요. 왜났냐구요? 그건... 그건 조금 있다가 아시게 될 겁니다.

 

간밤에는 꿈을 꿨어요. 만원버스 안이었는데요. 왼손에는 선물꾸러미가 들려 있었고 오른손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었죠.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전 기다렸다는 듯 아버지의 손을 놓고 제일 먼저 내렸어요. 그런데 버스에서 내리고 나서 뒤를 돌아보니까 버스가 저만치 가고 있는 거예요. 나만 내려놓고요. 버스 안에서는 아버지가 절 향해 손을 흔들고 계셨어요. 유령처럼 창백한 얼굴을 한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함박웃음을 지으시면서요. 전 아버지를 향해 목이 터져라 외쳤어요.

"아버지! 어디 가세요? 내리셔야죠. 내리세요, 아버지!"

아버지는 내리지 않으셨고 난 있는 힘을 다해 버스를 쫓아 갔어요. 하지만 아버지를 실은 버스는 점점 더 멀어져 저멀리 안개 속으로 유유히 사라져 갔어요.

아버지에 관한 최초의 기억은 그러니까 초등학교 다니기 이전 한 다섯 살 쯤 됐을 때 였던 것 같아요.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계셨구요. 머리가 약간 벗겨지셨어요. 주먹 코에 틀니를 하구 계셨고 까칠까칠한 턱수염을 나의 볼에 비비시곤 했죠. 그러면서 늘 두 눈을 지그시 감으시며 흐뭇한 표정을 지으셨는데 절 아주 귀여워하셨던 것 같았어요. 아버지가 흐뭇해 하시는 걸 보면서 저도 덩달아 흐뭇해했죠. 이게 아마도 아버지에 관한 최초의 기억인 듯 싶어요.

그 다음 기억은 잠자리에서 였던 것 같아요. 난 항상 엄마와 아버지 그 한 가운데에서 잠을 잤는데요. 한참을 곤히 자고 있노라면 옆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는 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귀신이라도 나타난게 아닐까 무서워서 눈을 뜰까 말까 고민했어요. 자다 깨서 보면 벽에 걸린 옷걸이도 귀신처럼 보이잖아요. 제가 그랬거든요. 하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엄마 품으로 파고 들어가면서 하나도 안무서운 척 '뭐야!' 하면서 눈을 번쩍 떴죠. 그런데 눈을 뜨고보니 아버지가 저를 넘어 와서 내 오른쪽에서 자고 있던 엄마에게 이상한 짓을 하며 괴롭히고 있는 거예요. 엄마는 막 싫다고 하시면서 고통스러워 하시는데요. 전 제 눈을 의심했어요. 아버지가 엄마를 못살게 굴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엄마는 항상 몸부림을 치다가도 아버지의 완력에 못이겨 차츰 아무런 저항도 못하셨어요. 난 점점 아버지가 밉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죄없는 엄마를 괴롭히니까 말예요. 그래서 일부러 엄마 배 위에 있는 아버지를 내려오게 하려고 아버지의 등 위에 발을 올려놓거나 심지어는 아버지의 등을 타 넘어가려고 했어요. 꽁알꽁알 잠꼬대까지 해대가면서요. 그랬더니 아버지는 내가 깼다는 걸 눈치채셨는지 은근 슬쩍 내 왼쪽 자기 자리로 돌아가시더니 바로 주무셨어요. 아마 주무시는 척 했을 거예요. 그 다음부터 아버지는 나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각별히 조심하면서 엄마를 계속 괴롭혔어요. 엄마는 여전히 아버지에게 이상한 짓을 당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쳤구요. 아버지는 내가 잠이 깨지 않은 줄 알고 있었지만요. 사실 전 이미 잠이 깬 상태였죠. 잠든 척 몰래 다 훔쳐 보고 있었어요. 아버지가 엄마에게 애 깬다고 가만히 있으라고 속삭이는 소리도 다 들었고요. 엄마가 아버지에게 '여보, 살살 좀 해요'라고 말하는 것도 다 들었어요. 그때 제 속이 어땠는지 아세요? 정말 열났어요. 부글부글 끓어 올랐죠.

명절 때 였어요. 아마 추석이었을 거예요. 그땐 왜 그렇게 명절이 기다려졌는지 모르겠어요. 일가 친척들이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정을 나누고 확인하는 시간이라 그랬을테지만 사실 난 평소에 입맛만 다시며 그리워하던 음식들을 실컷 먹어 볼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참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귀여운 송편, 살얼음에 잣이 동동 띄워져 있는 쌀식혜, 노릇노릇 구워진 참조기, 파전, 산적 등 여러 종류의 지짐, 호랑이도 무서워하는 곶감, 특히 소고기를 다져 만든 육원전요. 동그랑땡이라고도 하죠. 남녀노소 할 것없이 먹는 즐거움은 가장 큰 행복이었거든요. 오죽하면 '밥 먹었니? 뭐 먹었니?'가 인사였겠어요. 이렇게 즐거운 명절날 엄마는 하얗게 서리가 내린 꼭두 새벽부터 자정이 넘어서까지 꼬박 열 여덟시간 이상 중노동을 하셔야했어요. 워낙 식구들도 많은데다 찾아 오는 손님들도 많았거든요. 그만큼 일거리가 많았던 거죠. 그런데도 엄마는 단 한 순간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셨어요. 하루종일 웃는 얼굴이셨죠. 그렇지만 엄마의 웃는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흩트러진 머리카락 몇가닥이 힘없이 늘어져 흐느끼는 것같이 보였어요. 건장한 청년들도 그렇게 하루에도 수십번씩 음식을 나르고 전을 부치고 밥상을 차렸다 접었다 하다보면 녹초가 됐을 거예요. 근데 우리 아버지는요. 무슨 대단한 벼슬이라도 한 사람처럼 '어이! 이거 가져와, 어이! 저거 가져와'하시면서 심하게 엄마를 부려먹으셨어요. 가만히 앉아서 화투만 치고 있으면서요. 정말 얄밉게요. 명절때는 으레 화투판이 벌어졌거든요. 안방에서는 어른들의 화투판이 벌어졌고 건넌방에서는 형들의 화투판이 벌여졌어요. 그래도 다행인건 평소 같으면 막 야단을 치셨겠지만 이날 만큼은 형들이 화투 만지는 걸 아버지가 용납하셨다는 사실예요. 엄마는 음식 갖다 대기에 바빴고 난 안방과 건넌방을 요리조리 오가며 누가 돈을 따나 유심히 들여다봤죠. 그랬더니 돈을 따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 차례가 됐을때 화투장을 오래 붙들고 있다가 내놓는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성질이 급한 사람은 십중팔구 다 잃었고요. 아버지는 전자였어요.

"스톱! 오광에 쓰리고야!"

방 안에서 아버지의 흥분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어요. 그럴때마다 나도 모르게 토끼처럼 제자리에서 깡총깡총 뛰면서 즐거워했어요. 기쁘더라고요. 아버지가 따니까요. 그리고 꽁도 많이 생길 거구요. 이제 곧 기분좋은 명절을 마감하는 찰나였죠. 하지만 하루종일 고생하신 엄마한테 잠잘 때 또 그 이상한 짓을 하시는 걸 보고 다시 아버지가 미워졌어요. 한마디로 짐승같았어요.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밑에 깔리셔서요. 옆에서 아버지와 엄마가 내는 신음소리를 들으며 명절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동그랑땡은 매일매일 먹고 싶었지만요.

다음날 아침, 까치울음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려왔어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차가우면서도 신선한 공기는 나도 모르게 기지개를 펴개 했구요. 그러나 상쾌한 기분도 잠시뿐, 난 얼른 이불을 뒤집어 쓰고 손으로 요를 더듬어 봤어요. 아니나다를까 이불이 축축한 거예요. 이상하게도 명절 다음날 아침엔 꼭 일을 저질렀어요. 이불에 지도를 그렸거든요. 우리나라 지도를 가장 많이 그렸고요. 가끔 영국 지도도 그렸어요. 이불에 지도를 그린 날은 어김없이 나보다 더 큰 키를 뒤짚어쓰고 동네방네 소금을 얻으러 다녔는대요. 소꿉친구 미자네 집에 갈때가 가장 창피했어요. 미자는 한번도 소금을 얻으러 다닌 적이 없거든요. 그래도 시장에서 새우장사를 해서 그런지 미자네 엄마는 제가 가면 소금을 한 됫박씩이나 주셨어요. 그날도 이불에 지도를 그리고 미자네 집에 소금을 얻으러 갔을 땐대요. 대문을 두드리자 잠시 후 안에서 누가 나오는 소리가 들렸어요. '삐거덕'하며 문이 열렸는데 불행하게도 미자네 엄마가 나오질 않고 미자가 대신 나온 거예요.

"또 쌌니?"

"응. 아니! 뭘 싸?"

"오줌!"

"아아냐, 엄마 심부름 온거야. 소금 좀 얻어 오라구..."

"소금 없어."

"그럼 새우라도 줘라."

"없어. 이 바보야."

"미자야, 내가 있다가 딱지 줄게. 그러니까..."

"앞으로 너랑 안놀거야. 이 오줌싸개야!"

미자는 이렇게 내 가슴에 못을 박고는 대문을 '꽝' 닫고 들어가 버렸어요. 그 이후부터 미자는 정말 나와 놀지 않았어요. 대신 구두방 아들 용섭이하고만 놀았어요. 용섭이랑 나랑 경쟁관계에 있는 걸 알면서 일부러 그랬던 거예요. 용섭이는 태권도를 아주 잘했는데 나와는 툭하면 싸우는 사이였거든요. 태권도를 잘한다고 싸움도 잘하는 건 아녔어요. 하지만 용섭이가 미자 앞에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거 아니라고 떠벌리면서 태극 5장을 시범보인 적이 있는데 그날 미자는 용섭이에게 완전히 반한 것 같았어요. 미자가 용섭이하고만 노는 걸 보면서 난 아버지를 원망했어요. 이 모든 게 아버지 때문이라고요. 키만 뒤집어 쓰지 않았더라도, 바가지만 들고 가지 않았더라도 미자가 날 이렇게 까지 무시하진 않았을텐데 말예요. 결국 아버지가 날 창피하게 만든 거였어요.

아버지와 용인 자연농원에 갔을때는요. 지금은 에버랜드라고 이름을 바꿨더군요. 에버랜드보다 자연농원이 더 좋은데... 뭐랄까 좀 더 친근하고 귀엽잖아요. 또 한국말이기도 하고요. 아버지는 제 손을 잡고 자연농원 안을 이리저리 끌고 다녔어요. 내가 신나 있어야 했는데 도리어 아버지가 신나 있는 거예요. 풍선을 사질않나 운전면허증도 없으면서 모형자동차를 타고 폼을 잡질 않나, 청룡열차를 탔을 때도 그래요. 난 사람들이 꽥꽥 비명을 지르는 걸 보면서 청룡열차는 정말 무섭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타고 싶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하나도 안 무섭다고 억지로 태웠거든요. 결국 태어나서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껴봤어요. 청룡열차는 내게 죽음 그 자체였어요. 온몸이 긴장되고 떨려서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어요. 심장이 멈출 것 같았어요. 근데 아버지는 껄껄대며 혼자 웃겨 죽겠다는 거에요. 다른 사람들이 옆에서 비명을 내지를때마다 더 크게 웃으시면서 말에요. 이렇게 재미있는데 뭐가 무섭냐고 그러면서요. 틀니를 들어내며 웃는 모습이 마치 이무기 같더라구요. 내가 어린아이라는 걸, 자기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여자라는 걸, 그리고 뒷좌석에는 노인 분들도 있다는 걸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거죠. 모든 걸 다 아버지 잣대로만 생각했으니까요. 여하튼 아버지는 신나 있었어요. 얼마나 신나 있었냐하면요. 아버지가 사준 핫도그를 먹어 본 게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니까요. 핫도그를 먹었다고 기분이 좋아진 건 아녔어요. 더 나빠졌죠. 청룡열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침에 먹은 미역국부터 조금 전 먹은 핫도그까지 다 토해 버렸거든요.

또 있어요. 아버지하고 동네 목욕탕에 갔을때는요. 날 번쩍 집어 들더니 뜨거운 열탕 속에 집어 넣는 거예요. 살이 익어 죽는 줄 알았어요. 너무 뜨거워서 열탕 밖으로 나가려고 발버둥을 치며 징얼댔죠. 그래도 소용없었어요. 오히려 열탕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날 억지로 끌어 당겨서 자기 가랑이 사이에 놓고 옴싹달싹 못하게 했으니까요. 그러시면서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어이 시원하다."

남은 뜨거워 죽겠는데 시원하다는 거예요.

 

우리 아버지는 철물점을 운영하셨어요. 인광철물점요. 장사 수완이 좋고 신용이 좋아 장사꾼들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로부터도 많은 인정을 받으셨어요. 당연히 장사가 엄청 잘됐죠. 가게는 손님들로 북적댔구요. 어느정도였나면요. 형들이 몰래 가게 금고 안에서 돈을 슬쩍 해가도 전혀 모를 정도였어요. 특히나 가게 밖 길거리에 진열해 놓은 못을 팔기 위해 아버지가 밖으로 나가셨을 때 형들의 손이 바빠졌죠. 이때는 100퍼센트 완전범죄였어요. 엄마도 몰래 돈을 슬쩍했는데요. 장독대의 맨 뒤쪽 오른쪽 첫 번째 항아리에 슬쩍한 돈을 모아뒀어요. 그걸 어떻게 알았냐구요? 난 장독대의 맨 뒤쪽 오른쪽 두 번째 항아리에 구슬을 담아 뒀거든요. 어느날 구슬을 꺼내려고 잘못해서 두 번째가 아닌 첫 번째 항아리를 열었는데 돈이 가득 담겨 있지 뭐예요. 그래서 알게 됐어요. 몇일간을 숨어서 항아리에 누가 돈을 넣어 두나 지켜봤더랬죠. 엄마가 바가지 크기 만한 간장 종기를 들고 장독대로 오고 계셨어요. 둔한 몸짓으로 좌우를 살피시더니 문제의 항아리 뚜껑을 열고는 간장 종기 안에서 돈을 꺼내 항아리 안에 잽싸게 넣으셨어요. 만약 항아리 안에 돈을 넣은 범인들이 형들 중의 한 명이었다면 아버지한테 당장 일러 바쳤을 거예요. 예? 아뇨. 엄마가 항아리에 숨겨 둔 돈은 건드리지 않았어요. 한 번은 엄마가 첫 번째 항아리인줄 알고 두 번째 항아리를 열었다가 제 구슬을 발견하시고는 나를 야단치시려고 하셨어요. 그래서 난 첫번째 항아리에 돈이 가아득 들어 있다고 말했죠. 그랬더니 엄마는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된다고만 하시고 절 야단치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또 애들이 만지기에는 그 돈의 액수가 너무 컷어요. 난 돈이 필요하면 가게 맞은 편 행길까지 아장아장 걸어가서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어요.

"아버지! 10원만!, 아버지이, 10원만! 아버지이이, 10원만!"

그러면 아버지는 손님을 상대하다말고 큰일이라도 난 듯 가게 밖으로 뛰어 나오셔서 소리치셨어요.  

"예끼, 이놈아! 어서 들어가지 못해!"

처음엔 이러시다가도 대여섯 번 정도 10원만을 외치면 아버지는 가게 점원 관식이 형을 시켜서 10원을 보내 주셨어요. 전 나이가 어려서 도로를 건널 수 없었거든요. 그래서 관식이 형을 시켜서 돈을 보내 주신 거죠. 난 그돈을 갖고 구술이나 딱지를 사러 달려갔어요. 다 잃고 나면 난 또 길건너편에서 10원만을 외쳐댔죠. 그러면 이번엔 총채를 거꾸로 들고 나오셔서 소리치셨어요.

"이놈! 아버지한테 매 맞아볼래!"

제게 엄포를 놓으신거죠. 진짜 때릴 것 처럼 하시면서요. 하지만 난 영리해서 금방 눈치챘어요. 아버지가 쇼하는 거라는걸요.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으면 관식이 형이 10원을 갖고 행길을 건너 오는 거예요. 난 그럴 때마다 속으로 좋아서 어쩔 줄 몰랐죠. 또 잃고 와서 아버지를 불렀냐구요? 아니요. 이것도 한 두 번 이죠. 세 번 네 번은 안통해요. 참 관식이 형에 대해서 잠깐 얘기를 해야 겠네요. 관식이 형은 경상도 어디라더라 무슨 중학교를 다니다 관두고 무작정 상경을 했대요. 관식이 형 말로는 자기 엄마, 아빠가 버섯을 잘못 먹고 죽었는데 자기도 죽을뻔 했대요. 산에서 캐온 버섯을 맛있게 먹었는데 갑자기 구토가 나더니 탈진상태가 되더래요. 응급실에 실려 갔는데 자기 엄마, 아빠는 이미 죽은 상태였고 관식이 형만 간신히 목숨을 건졌대요. 이 얘기를 들으면서 전 웃음이 나와 참지 못했어요. 관식이 형한테는 비극이겠지만 전 왜 그렇게 웃긴지 모르겠더라고요. 버섯을 먹고 죽다니 말예요. 그야말로 버섯죽음이죠. 그 사건 이후 결심을 했대요.

"사람은 모름지기 알아야 사는기라, 그래야 안죽는다카이. 그리고 아를라카믄 큰 물에 가서 놀아야 되는기라."

그때는 관식이 형처럼 무작정 시골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물론 지금은 더 많지만요. 관식이 형은 무임승차한 기차 안에서 차장이 검표를 하러 다가오자 화장실에 가는 척 하면서 달리는 기차 안에서 뛰어 내렸대요. 영화의 한 장면처럼요. 관식이 형은 평소 다리를 약간 저는데 그때 기차에서 뛰어 내리다가 다친 거래요. 관식이 형의 말로는 기차에서 뛰어 내릴때에는 꼭 기차가 달리는 방향으로 뛰어 내려야 한다고 했어요. 반대로 뛰어 내리면 기차 바퀴에 빨려 들어가 죽는다구요. 일생동안 기차에서 뛰어 내릴 일이 꼭 한 번은 있을 수도 있으니 잘 들워두라고 하면서요. 기차에서 뛰어 내린 뒤 앞만 보고 한참을 내달리던 관식이 형은 큰 도로가 나오자 지나가는 인분 트럭을 얻어 탔는대요. 그 트럭이 수원까지 가는 트럭였대요. 수원에 도착한 관식이 형은 방범대원에게 검문을 받게 되었대요. 방금 산에서 내려온 사람마냥 신발은 흙투성이였고 십 여년 전에나 유행했을법한 남루한 옷차림에 얼굴은 까무잡잡한게 딱 간첩으로 오해 받기 십상이었던거죠. 그때 관식이 형을 검문한 사람은 박동기라는 분였는데요. 정말 운이 좋았던거죠. 잘못하면 끌려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봉변을 당하는 세상이었는데 동기 아저씨는 바로 우리 아버지의 사촌뻘 되는 사람인데다 평소 정이 많고 사람 좋기로 소문난 사람이었거든요. 동기 아저씨는 방범초소로 관식이 형을 데리고 가서 난로불에 일단 손을 녹이게 한 뒤 찬찬히 사연을 다 들은거죠. 듣고 있자니 구구절절 딱하잖아요. 게다가 때가 까맣게 낀 손톱으로 우걱우걱 빵을 먹는 모습이 거지와 별반 다를게 없고요. 맘 좋은 동기 아저씨가 가만히 있겠어요. 당연히 아버지한테 데려온거죠. 가게에 취직 시키라고요. 때마침 아버지는 가게 일손이 딸리고 있던 터라 흔쾌히 관식이 형을 점원으로 채용했어요. 우직하니 아주 일 잘하겠다고 하시면서요. 아버지는 경쟁 가게였던 동광철물보다 관식이 형의 월급을 더 많이 줬어요. 동광철물로 가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관식이 형도 아버지의 말을 잘 듣고 열심히 일했어요. 아버지는 점점 관식이 형을 친형들보다 더 믿게 됐어요. 관식이 형한테는 가게를 맡겨 놓고 나가셔도 친형들한테는 맡기시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관식이 형은 제 친형이나 마찬가지가 된거죠.

동기 아저씨가 그러는데요. 관식이 형의 몸을 수색해 보니까 팬티는 구멍이 뻥뻥 뚫려 있구 런닝구에선 벼룩이 나왔대요. 그리구 관식이 형의 유일한 소지품은요. 국민학교 성적표였는데 성적은 중간쯤이구요. 지도학습란에는 '일기를 솔직하고 재미있게 쓰나 맞춤법에 주의를 요함, 덧셈과 뺄셈에는 별 문제가 없으나 곱셈과 나눗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이라고 쓰여있었구 이상하게 결석은 한번도 없는데 조퇴 횟수가 굉장히 많았대요. 나중에 관식이 형 말로는 집의 농사일을 돕기 위해 조퇴를 자주 했다고 하더군요. 자기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공과를 가고 싶었지만 자기 아버지가 맨날 학교까지 쫓아와서는요.

"하라카는 농사일은 안하구 뭣땜에 공부하노? 퍼뜩 가서 소 꼴이나 한 짐 해온나!"

이랬대나요. 그리고 양양양가가가에 유일하게 수가 하나 있었는데요. 무슨 과목인 줄 아세요. 음악요! 그도 그럴 것이 관식이 형은 노래를 참 잘 불렀거든요. 평소에 제게 자주 노래를 불러 주곤 했어요. 특히 이 노래요. '이별의 부산정거장!'

관식이 형한테 하나도 부러운게 없었는데요. 딱 하나, 노래 잘 부르는 건 정말 부러웠어요. 전 아버지를 닮아서 노래를 참 못불렀거든요. 관식이 형한테 요즘처럼 매니저가 한 명 붙었다면 아마 잘나가는 유명 가수가 됐을지도 몰라요. 매니저요. 제가 할 걸 그랬어요. 노래는 잘 못불러도 매니저는 할 수 있으니까요. 매니저 참 좋은 직업 같아요. 아참, 이 얘기도 빼먹으면 안되죠. 관식이 형 아이큐요. 두 자리수였어요. 98이요. 관식이 형은 사람들의 아이큐가 대부분 98이하인 줄 알고 있었어요. 담임 선생님이 그랬대요.

"니가 우리 반에서 아이큐가 열 손가락안에 든다아이가. 그러니 니는 공부를 해야 한다아이가."

 

저희 철물점 옆 가게는 설렁탕집 였어요. '행운 설농탕' 집요. 아버지가 가끔 절 데리고 가서 설렁탕을 사주셨어요. 그 집 주인 할머니는 황해도 분이셨는데 저한테 되게 잘해주셨죠. 그리고 아버지한테두요. 아버지도 그 할머니한테 막 반말을 하면서 아주 친하게 대하셨어요. 엄마한테 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친절하게요. 엄마보다 예쁘지도 않고 젊지도 않은데도요. 키도 짝딸막하구요. 그래서 전 기분이 나빴어요. 설렁탕도 일부러 안먹었죠. 맛없는 척하면서 말에요. 한 두 숟가락 국물을 떠 먹다가 일부러 숟가락을 소리내서 내려놓으며 맛없다고 얘기했어요. 속으로는 맛있으면서 말예요. 그 할머니가 나한테 아무리 친절하게 대해줘도 설렁탕에 소고기를 남보다 더 듬뿍 담아줘도 난 그 할머니가 싫었어요. 그렇지만 행운 설농탕집 깍두기는 너무 맛있어서 안 먹을 수가 없었어요. 정말 너무 맛있었거든요. 그래서 깍두기는 먹었어요. 내가 먹는 걸 할머니가 눈치채지 않도록 몰래요. 요즘은 그렇게 맛있는 깍두기를 먹을 수가 없어요. 세상 어디에서두요. 그리고 총각김치두요. 아버지는 밥상머리에서 행운 설농탑 집 할머니와 엄마의 음식솜씨를 비교하면서 이건 짜다느니 이건 맵다느니 늘 엄마에게 핀잔을 주셨죠. 그럴때마다 엄마는 반찬을 다시 만드셨구요. 한번은 고등어 반찬이 나왔는데 무우를 넣지 않고 조렸다고 화를 벌컥 내셨어요. 엄마가 대꾸도 하지 않으면서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있자 갑자기 아버지는 밥상을 확 뒤엎으셨어요.

"이 망할 놈의 여편네가!"

"내가 뭘 잘못했다구 그래요 당신은?"

"고등어를 조릴땐 꼭 무우를 넣으라고 했잖아!"

틀니를 한 사람들은 원래 물렁물렁한 걸 좋아하잖아요.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매운 것 보다는 달짝지근한 것을 더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찌개에 고추를 넣는 것 보다는 양파를 넣는 걸 더 좋아하셨죠.

형들은 아버지를 엄청 무서워했어요. 벌벌 떨었죠. 거의 매일 아버지한테 매를 맞았으니까요. 아버지가 형들을 때린 이유가 아주 가지가지였어요. 제발 공부 좀 하라고 때렸구요. 형제끼리 싸우지 말라고 때렸구요. 밤에 불장난하지 말라고 때렸구요. 마당의 등나무에 매달리지 말라고 때렸구요. 여름에는 수영하지 말라고 때렸구요. 겨울에는 스케이트 타지 말라고 때렸어요.  아버지는 엄마도 때렸어요. 엄마를 때릴때는 형들 때릴때보다 더 세게 때리셨어요. 형들이 맞을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엄마가 맞을때는 아주아주 슬펐어요. 아버지는 엄마의 머리채를 잡고 방안을 질질 끌고 다니셨고 엄마는 한 대라도 덜 맞으시려고 제발 살려달라며 싹싹 빌었어요. 속옷차림으로요. 전 장롱과 벽사이의 틈에 꼭 숨어서 하느님께 기도했어요.

"하느님, 우리 엄마 코에서 피가 나요. 제발 아버지가 엄마를 때리지 말게 해주세요."

그렇지만 하느님은 제 기도를 들어 주지 않으셨어요. 엄마 입에서 다시는 땅같은 거 사놓지 않겠다는 말이 수백번쯤은 나온 뒤에야 비로소 들어줄까말까였어요. 엄마는 아버지 몰래 항아리에 모은 돈으로 땅을 사두셨는데 아버지는 땅을 사두는 걸 굉장히 싫어하셨거든요. 투기라고 하시면서요. 그래서 엄마가 땅을 사면 아버지는 크게 화를 내셨죠. 우리 집에서 아버지한테 맞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단 한사람, 저를 빼고는요. 전 때리지 않으셨어요. 수박 서리하다 걸려서 끌려 왔을때도, 성냥 불로 메뚜기 구워먹으려다 불낼뻔 했을때도, 야구놀이하다가 옆집 유리창을 깼을때두요. 아무리 내가 나쁜 짓을 하고 말썽을 피워두 아버지는 절 때리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또 전 영리해서 아버지가 제일루 싫어하는 수영두 스케이트도 타러 다니지 않았거든요. 어찌됐건 아버지는 매를 한번도 들지 않을만큼 절 귀여워하셨어요. 한가지 물어볼게 있다구요? 근데 어떻게 형들이나 엄마가 그런 무서운 아버지의 금고에서 돈을 슬쩍 할 수 있냐구요? 사실 저두 그게 불가사의예요. 형들이나 엄마가 그렇게 깡다구가 있는 것도 아녔는데. 어떻게 그랬을까요? 아마 아버지보다 자기 수중에 돈이 없다는게 더 무서웠던 걸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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