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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글/시나리오

춤추는 하루

by Park, Hongjin 2009. 11. 27.

<단편 시나리오>

장르 : 실험영화
춤추는 하루
One Dancing Day

각본 : 박홍진

□ 작의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이 들기까지의 사람의 하루 일과를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인간의 일생으로 치환하여, 이를 통해 삶 속에서 진실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보고자한다.

□ 전체 구성안

·프롤로그 - 사진 속. 과거의 어느 시간과 공간. 사람들이 어울려 노래한다.
·꿈 - 아직 태어나기 이전이다. 어머니의 자궁 속. 헤엄쳐 다니고 있다.
·기상 - 일어나서 외출하기 전까지의 아침의 일상.
·걷기 - 앞만 보며 거리를 걷는다.
·부딪히기 - 사람들과 부딪친다.
·피하기 - 더 이상 부딪치지 않기 위해 피해 다닌다.
·두리번거리기 - 피해 다니다 낯선 곳에 도달한다.
·따라하기 - 남의 행동을 따라한다.
·싸우기 - 남의 행동에 싫증이 나고 비웃다가 서로 싸운다.
·일하기 - 각자 일한다.
·숨기 - 집으로 귀가하던 중 위험을 느끼게 되고 몸을 숨긴다.
·찾기 - 잃어버린 소지품을 찾는다.
·뺏기 - 남의 것을 뺏는다.
·쫓고 쫓기기 - 서로 쫓고 쫓긴다.
·사고 - 교통사고가 난다.
·증언하기 - 목격자들이 증언을 한다.
·포옹하기 -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서로 기뻐서 포옹한다.
·섹스 - 포옹이 섹스로 이어진다.
·먹기 - 섹스 후에 음식을 먹는다.
·취침 - 잠자리에 든다.
·에필로그 - 침묵의 오케스트라 속에 막이 내린다.

□ 시놉시스

이봉달(아빠), 고현옥(엄마), 이봉희(고모), 이민선(딸), 이민국(아들), 이민현(아들)은 한 가족이다. 그러나 한 가족임과 동시에 서로 전혀 모르는 보편적 인간들이다.

기상을 알리는 시계종 소리와 함께 이들은 모두 잠자리에서 일어나 외출한다. 거리를 걷다가 서로 부딪치게 되고 부딪치지 않으려고 피해 다니다가 낯선 곳에 이르른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음악 소리에 맞춰 봉희가 노래를 부르자 사람들은 모두 따라한다. 각자 자기만의 습관적인 행위를 하다가 상대방을 비웃기 시작하고 결국 싸움이 벌어진다. 한바탕 싸움을 벌인 후 각자의 일터에 도착한 이들은 일을 하면서 자신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던 중 서로를 경계하며 겁을 먹고 숨는다. 그런 와중에 소지품을 분실하게 되고 소지품을 찾다가 상대방의 소지품에 욕심을 내게 된다. 그리고 상대방의 소지품을 뺏으려고 한다. 뺏기지 않으려고 도망친다. 쫓고 쫓기게 된다. 그러다가 민선이 사고를 당하게 된다. 사고를 목격한 사람들은 목격자 증언을 하게 되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민선은 멀쩡하게 살아난다. 민선이 살아나자 모두 기쁜 나머지 서로 포옹한다. 포옹이 계속되다 섹스로 발전된다.

섹스 후의 음식 먹기. 먹고 나서 내일을 기약하며 모두들 잠자리에 든다.

□ 등장인물

이봉달 : 49세. 회사원. 아빠. 이 시대 일반적인 가장의 이미지로 남의 일에 참견하지도 참견 받기도 싫어하는 스타일. 그러나 남의 눈치를 보는 일이 몸에 배어 있고 매사 조심스럽다. 그렇지만 비굴해 보이지는 않는다.

고현옥 : 48세. 교사. 엄마. 고상한 척 잘난 체를 하지만 실제론 마음이 여리고 정이 많다. 모든지 올바른 생활을 강조하는 스타일.

이봉희 : 35세. 배우. 고모. 화려한 생활을 동경하며 호탕하다. 스타가 간직할만한 대중성을 스스로 뽐낸다.

이민선 : 24세. 간호사. 딸. 아빠와 엄마의 성격이 적절히 배합되어 규칙적이며 건전한 생활 태도를 보이면서도 주위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내숭기도 있다.

이민국 : 22세. 대학생. 아들. 컴퓨터를 전공하는 대학생으로 창의성이 뛰어나고 다소 반항적인 기질을 갖고 있다.

이민현 : 18세. 고등학생. 아들. 같은 나이 또래 아이들보다 둔하고 어리숙하다. 학교 성적은 중간 정도를 유지하고 있고 공부 보다는 독서와 기타 연주에 관심있다.

 

S#1. 프롤로그, 노래방

- 블랙화면 상태에서 메인 타이틀 "춤추는 하루" 뜨고
- 여러 사람들의 헛기침 소리
- 색바랜 사진처럼 어슴푸레한 회색 빛 조명
- 노래방 복도가 희미하게 보이고 룸 안에서 노래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다.
- 노래방 룸 안에서 아래 아주 오래 전부터 그래왔다는 듯 사람들이 모여 노래하고 있다. 이들의 모습은 암전이 되면 살짝 남는 잔상처럼 희미하기만하다.
- 탁자 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과자 부스러기들, 맥주캔들.
- 틸-업하면 룸 천장에서 돌아가고 있는 미러블 조명기.
- 틸-다운되면 서로 마이크를 차지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
- 이때 막 노래가 끝나고 다들 룸 안을 나갔다 들어왔다한다.
- 서로에게 무서운 표정을 짓는다.
- 서서히 신나는 음악 소리 흘러 나오기 시작하고 다함께 어울려 노래한다.
- 블랙화면.

[남 N] (웅얼거림, 다소 설명적으로) 이 이야기는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히는 현실의 은유이다. 가볍지만 진지한 무겁지만 깃털 같은 모순의 앞과 뒤이다.

- 다시 노래하는 모습.
- 노래하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점차 열광적으로 변해간다. 마치 광신도들의 종교 의식과도 같은 모습이다.
- 그 정점에서 감미로운 클래식이 흘러 나오면
- <f.o>

S#2. 꿈, 밤하늘 (밤)

- 별이 반짝이고 있다.
-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볼펜, 재떨이, 숟가락 같은 것들이 진공 상태에 놓인 부유물처럼 가볍게 떠다니고 있다.
- 사람들은 별 사이를 오고가며 서로를 위로하듯 부드럽게 미소짓는다. 이들은 마치 별의 수호신처럼 별 모양의 종이모자를 쓰고 과장되게 행동한다.

[남 N] 아주 오래전 우리 조상들은
[여 N]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남 N] 꿈 속에서 현재를 보았대.
[여 N] 우주 저편 미지의 행성에서는
[남 N] 거기에 나도 있었지.
[여 N] 우리보다 훨씬 바쁜 시간들이 있었대.
[남 N] 그것 참 신기한 일이지.
[여 N] 신비로운 일이야.
[남 N] 커다란 폭발과 함께 시간이 쪼개어지고
[여 N] 꿈과 현실이 나뉘었대.

- 불빛이 하나 둘 꺼지기 시작한다.
- 맨 마지막의 전등 하나가 꺼지면 적막 같은 고요함만이 남는다.

<INS>
- 아파트 전경

S#3. 아파트 안

- 베란다 창문을 통해 밝은 햇살이 들어오고 있다.
- '따르릉' 시계종 소리.
- 갑자기 요란한 음악소리.
- 사방에서 사람들이 튀어 나온다.
- 같은 공간이지만 서로 다른 공간인 것처럼 각자 자신의 아침 일상을 보여준다. 각자는 자신의 상황에 맞는 의성어와 애드립을 계속해서 소리낸다. 슬로우 모션(slow motion)과 패스트 모션(fast motion)의 반복.
- 세수하는 '고'.
- 가방을 꾸리는 '고'.
- 교복을 입는 '고'
- 아파트 밖으로 나가는 '고'
- 눈을 비비며 아무데서나 쓰러져 자다가 조금만 더 자려고 계속 시계를 보며 뒤척거리는 '대'.
- 그러다가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는 '대'
- 아파트 밖으로 나가는 '대'
-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면서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다가 어쩔 수없이 일어나 되는 대로 옷을 집어 입고 스타킹을 신는 '간'.
- 스타킹 때문에 신경질을 내는 '간'.
- 아파트 밖으로 나가는 '간'.
- 뒤가 마려 화장실로 뛰어가는 '회'.
- 볼일을 다 보고 난 뒤 불만스런 표정으로 신문을 읽는 '회'.
- 피곤한 듯 반쯤 눈을 감은 채 식사하는 '회'.
- 아파트 밖으로 나가는 '회'.
- 얼굴에 화장품을 덕지덕지 바른 채 춤추고 흥얼거리고 머리 손질에 여념이 없는 '배'.
- 아파트 밖으로 나가는 '배'.
- 이리저리 이것저것 찾아 헤매는 '교'.
- 아파트 밖으로 나가는 '교'
- 엉망진창 지저분해진 거실.
- '간'이 들어오더니 핸드백을 챙겨들고 나간다.

S#4. 거리

-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 발, 발.
- 음악 서서히 작아진다.
- '대' 걸어온다. 걷다가 멈춰 서서 하품을 한다.
- '배' 걸어온다. 걷다가 멈춰 서서 손거울을 꺼내 보며 화장을 고친다.
- '회' 걸어온다. 걷다가 멈춰 서서 신문을 꺼내 읽는다.
- '간' 걸어온다. 걷다가 멈춰 서서 핸드폰을 받는다.
- '고' 걸어온다. 걷다가 멈춰 서서 껌을 꺼내 씹는다.
- '교' 걸어온다.
- 어느새 모두 함께 걷고 있다.
- '교'가 걷다가 멈춰 선다.
-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동전.
- '교'가 동전을 줍는다.
- 다른 사람들이 멈춰 서서 시계를 본다.
- 9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계바늘.
- 다들 빠르게 걷는다.
- 빠른 걸음과 느린 걸음의 협주.
- 걸어가는 흉내를 내는 손가락의 모습.
- 심장 박동소리, 호흡소리.

[고] 정말 땀난다.
[대] 생리학적 증후군이지.
[배] 땀은 호흡의 리듬과 비례해.

- 걷다가 서로 부딪힌다.
- 바닥에 쓰러진다.
- 다시 일어나 걷는다.
- 걷다가 서로 부딪힌다.
- 바닥에 쓰러진다.
- 다시 일어나 걷는다.
- 세번 더 반복된다.
- '고'가 쓰러진다.
- '대'가 쓰러진다.
- '간'이 쓰러진다.
- '배'가 쓰러진다.
- '교'가 쓰러진다.
- '회'가 쓰러진다.
- 모두 쓰러져있다.

[교] 출근 수단을 변경해야겠어. 자꾸 부딪히는 걸.
[고] 다른 길로 등교해야지.
[대] 다른 길도 마찬가지야.
[회] 앞 좀 보고 다니시지.
[배] 모두들 정신나갔군요.
[간] 난 이 길 밖에 없어요.

- 각자 조심스레 바닥에서 일어나 옷을 훌훌 털고 다시 걷는다.
- 부딪힐뻔 하다말고 서로 피해간다.

S#5. 섬

- 사방을 기웃기웃거린다.
- 어디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들.
- 두리번거린다.
- 경계한다.
- 디지털 영상

[교] (회에게) 으음… 여기가 어디지?

- 모두가 귀를 기울인다.

[회] 모르겠는데요.
[교, 회] (배에게) 으음… 여기가 어디지?

- 모두가 귀를 기울인다.

[배] 모르겠는데요.
[교, 회, 배] (간에게) 으음… 여기가 어디지?

- 모두가 귀를 기울인다.

[간] 모르겠는데요.
[교, 회, 배, 간] (고에게) 으음… 여기가 어디지?

- 모두가 귀를 기울인다.

[고] 모르겠는데요.
[교,변,배,간,고] (대에게) 으음… 여기가 어디지?
[대] 모르겠는데요.
[모두] (행인에게) 저어...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여기가 어딘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행인] 이곳은 끝이자 시작인 곳입니다.

- 서로 쳐다보며 어리둥절한 표정들을 짓는다.

[교]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행인] 이곳은 프로그램화되어 있는 곳입니다.
[회] 점점...
[교] 엉뚱한 사람이군.
[간] 미친 사람 같아요.
[대] 말조심해.
[배] 쉿!

- 모두가 귀를 기울인다.
- 멀리서 조그맣게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 음악에 맞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율동하기 시작하는 '배'.
- 춤추며 노래 부른다.
- '배'의 경쾌한 춤.
- 한 명씩 한 명씩 '배'를 따라한다.
- 대열이 만들어진다. 배-고-대-간-변-교 순이다.
- 앞사람을 따라하던 '대'가 대열에서 이탈하여 야구를 한다.
- '간'과 '교'가 대열에서 이탈하여 '대'를 따라한다.
- 배-고-변과 대-간-교의 대열.
- '교'가 대열에서 이탈하여 화투를 벌린다.
- '고'가 따라한다.
- 배-변, 대-간, 교-고의 대열.
- '변'이 대열에서 이탈하여 자동차 운전을 한다.
- '간'이 이탈하여 춤을 춘다.
- '고'가 이탈하여 컴퓨터 게임을 한다.
- 모두 각자 자신의 행동에 열중한다.
- 재미있어한다.
- 즐긴다.
- 점차 싫증나기 시작한다.
- 지겨워지려고 한다.
- 옆 사람을 슬쩍 쳐다본다.
- 옆 사람을 주의 깊게 쳐다본다.

[모두] 와 와 와 와 와...
[모두] 헤이 헤이 헤이...
[모두] 자 자 자 자 자...
[모두] 어이 어이 어이...

- 서로 비웃기 시작한다.
- 쓸데없는 참견들.
- 남의 행동을 보고 콧방귀를 뀐다.
- 사사로운 시비가 붙는다.
- 또 다른 시비가 붙고 그로 인해 또 다른 시비가 붙는다.
- 마침내 인물들은 자기 이외의 다른 사람을 모두 적으로 만든다.
- 삿대질과 함께 욕지거리를 해댄다.  

[배] 원숭이 똥구멍
[변] 돼지 콧구멍
[교] 말 대가리
[대] 닭 대가리
[고] 코끼리 발목
[간] 개 발바닥
[배] 용 꼬리
[변] 쥐 꼬리
[교] 뱀 혓바닥
[대] 고양이 수염
[고] 토끼 간
[간] 자라 자지

- 처음엔 툭하고 시작됐던 싸움이 격렬한 양상으로 변해 가기 시작한다.

[고] 덤벼, 덤비라구, 덤벼봐....
[간] 야, 야, 야....
[변] 닥쳐, 닥치지 못해, 닥치라니깐....
[대] 때려봐, 때려봐, 어디 한 번 때려보시지....
[교] 어디서 배워 먹은 버르장머리야. 건방지게시리. 아래 위도 몰라보고...
[배] 죽을래, 죽고 싶어, 그래 우리 같이 죽자....

- 서로 뒤엉킨다.
- 죽일 듯이 물고 물리는 일대 격전.
- 1:5의 주먹다짐.
- 음악이 흘러 나오고
- 몸싸움이 음악에 맞춰 율동으로 변하면서 싸움이 춤이 된다.
- 음악이 끝나자 다시 싸운다.
- 싸움에 밀려 '교'가 슬그머니 사라진다.
- 변-배-대-고-간 순으로 사라진다.
- 흐린 하늘.
- 잠시 빈 공간.
- '교'가 들어와 걷는다.
- '변'이 들어와 걷는다.
- '교'와 '변'은 서로 마주치자 다시 일전의 격렬한 싸움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 '배'가 들어온다.
- 함께 싸운다.
- '대'가 들어온다. 싸움에 합류한다.
- '고'가 들어온다. 싸움에 합류한다.
- '간'이 들어온다. 싸움에 합류한다. 순간 슬로우 모션으로 변한다.
- 격렬히 싸우는 모습.
- 모두 멈춘다.
- 플래쉬(flash)가 터진다.
- 암전.
- 음악소리(혹은 사이렌 소리)와 함께 강한 플래쉬 빛이 사방을 비춘다.

[모두]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남자 나레이션] 어릴 적 기억의 저편에 살아있는 그림자, 검은 그림자
[여자 나레이션] 이름모를 사람들의 목소리.
[남자 나레이션] 아직도 살아서 꿈틀거리며 손을 내밀며
[여자 나레이션] 아주 저 멀리서
[남자 나레이션]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도 있겠지.
[여자 나레이션] 메아리쳐 온다.

- 한 사람씩 도망치듯 달아난다.

<INS>
- 거대한 빌딩.

S#6. 밀페된 공간 안

- 사람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획되고 꾸며진 일의 공간.
- 시계침 소리.
- '회'가 서류를 정리하고 있다.
- '간'이 환자를 돌보는 시늉을 한다.
- '대'가 졸고 있다.
- '고'가 두 손을 들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 '교'가 교과서를 들고 가르치고 있다.
- '배'가 분장을 하고 있다.
- 고조되는 시계침 소리.
- 괴성.
- 언어는 해체되고 남는 것은 소리 뿐이다.
- '고'는 회와 대화하듯 이야기한다.

[고] 용서해 주세요.

- '회'는 간과 대화하듯 이야기한다.

[회] 죄가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무죄 판결을 내린단다.

- '대'는 고와 대화하듯 이야기한다.

[대] 어릴 적 내 꿈은 화가가 되는 거였어.

- '배'는 대와 대화하듯 이야기한다.

[배] 이 직업도 오래하긴 힘들어.

- '간'은 배와 대화하듯 이야기한다.

[간] 주사맞기 싫어하는 사람은 다른 일도 하기 싫어해요.

- '교'는 회와 대화하듯 이야기한다.

[교] 요즘 애들은 가치관이 없어.
[회]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양심을 저버릴때가 많지.
[간] 젊다고 몸을 막 굴리면 늙어서 고생해요.
[배] 예술이 모든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해주니까 정말 좋지.
[대] 자기 적성에 맞는 일을 해야 후회하지 않는거야.
[고]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잖아요.
[대] 모든 게 다 자기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최대한 노력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야.
[배] 그러니까 예술하려고 다들 난리지.
[간] 수술실에 들어가는게 제일 싫어요.
[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고 만단다.
[교] 다들 자기 잘난 줄만 알아.
[회] 세상은 정말 끔찍한 곳이란다.
[간] 사람 뱃속이 얼마나 징그러운데요.
[배] 하루종일 예술만 하고 있으면 멍청해지지.
[교] 먹고 싸고 노는 것만 좋아해.
[간] 정말 더러워서 못살겠어요.
[대] 노력하기 싫으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거야.
[고] 앞으로 열심히 공부할게요.
[회] 여자는 항상 조심해야 한단다.
[간] 약을 사먹는 것보다 엉덩이에 주사 한 방 맞는게 훨씬 좋아요.
[회] 성폭행 당하기 십상이란다.
[교] 공부하는 꼴을 못보겠어.
[고] 난 거짓말 할 줄 몰라요.
[간] 병원에 가기 싫으면 약국으로 가세요.
[대] 천재는 1퍼센트의 재능과 99퍼센트의 노력으로 되는거야.
[배] 세상은 예술가 천지라니까.
[고] 솔직히 학교가기 싫어요.
[교] 말 안듣는 애들은 맞아야돼.
[간] 환자들이 자꾸 내 엉덩이를 만져요.

- 시계침 소리.

[대] 잘생겼다는 소리보다 천재라는 소리가 더 듣고 싶어.
[간] 나만 보면 따먹을려고 하는 놈들 뿐이에요. 처음엔 좋았는데 이젠 지겨워요.
[고] 제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게 해 주세요.
[배] 난 예술 없인 못살아.
[회] 범죄없는 세상이 내가 꿈꾸는 세상이란다.
[교] 딸딸이 치지마!

- 말을 마친 사람들은 집으로 귀가할 채비를 한다.

S#7. 거리

- 처음의 거리와는 사뭇 다르다.
-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
- 군인들처럼 오와 열을 맞춰 걷는다.
- 맥박 소리, 심장 뛰는 소리.

S#7. 골목

- 어슴푸레 비치고 있는 외등 불빛.
- 골목길로 접어드는 사람들.
- 서로서로 힐끔힐끔 쳐다본다.
- 두려워 한다.
-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다.
- 주위를 둘러본다.
- 두리번거리며 경계한다.
- 몸을 움츠린다.
- 여기저기 숨을 곳을 찾는다.
- 숨을 곳을 찾은 사람은 부리나케 뛰어가 몸을 숨긴다.
- 숨어서 조심스럽게 동태를 살핀다.
- 숨어 있는 상태에서 몸을 뒤지기 시작한다.
- 허둥댄다.
- 뭔가를 잃어 버렸다.

[교] 내 책
[모두] 어 허 어 허 어 허...
[대] 내 수첩
[모두] 아이 이런.
[간] 내 핸드폰
[모두] 쯧쯧쯧...
[회] 내 안경
[모두] 저런...
[배] 내 시디
[모두] 그것 참...
[고] 내 가방
[모두] 쩝 쩝 쩝...

- 잃어버린 것을 찾기 시작한다.
- 구석구석 샅샅이 찾는다.
- 잃었던 것을 찾은 사람은 환호한다. 열광한다. 기뻐 날뛴다.

[배] 안경!
[간] 가방!
[고] 핸드폰!
[회] 책!
[교] 수첩!
[대] 시디!

- 찾은 것을 서로 교환한다.
- 이리저리 바꿔 가며 교환한다.
- 던지기 시작한다.
- 서로 던지고 받기를 계속한다.

[교] 내 책!
[대] 내 수첩!
[간] 내 핸드폰!
[회] 내 안경!
[배] 내 시디!
[고] 내 가방!

- 옆사람 것을 힐끔 본다.
- 유심히 쳐다본다.
- 탐낸다.
- 서로 팽팽한 대립 속에 자기 것을 꽉 끌어안고 있다.
- 상대방의 것을 뺏으려고 한다.
- 서로 뺏는다.
- 서로 뺏기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한다.
- 뺏고 뺏긴다.
- 뺏긴 사람이 뺏은 사람을 쫓는다.
- 뺏은 사람이 뺏긴 사람을 쫓는다.
- 격렬하고 요란한 타악기 소리.
- 쫓고 쫓긴다.
- 뒤죽박죽 엉킨다.

S#8. 도로 (밤)

- 자동차 급정거 소리.
- '대'가 쓰러진다.
- 모든 사람들은 슬로우 모션으로 행동한다.
- 쓰러져 있는 '대'의 주위로 몰려든다.
- '대'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사고 목격 장면을 증언한다.

[회] 어머 이걸 어째. 죽었나봐.
[배] 구급차를 불러야죠.
[간] 숨을 안셔요.
[교] 하얀색 이었어.
[고] 검정색 이였어요.
[교] 흰색 였다니까.
[고] 검은색 였어요.
[배] 어서 구급차를 불러요.
[간] 늦었어요.
[배] 인공호흡을 하면 어떨까?
[간] 이미 심장이 멈췄어요.
[회] 젊은 나이에 심장이 멈추다니 안됐군.
[교] 분명히 흰색 이었어.
[고] 검정색이 틀림없어요.
[교] 그만 좀 우겨. 너 색맹이지?
[고] 좌1.5 우2.0예요.
[교] 그러니까 너 색맹이지?
[고] 나 시력 좋아요.
[배] 살려 낼 방법이 없을까요?
[회] 심장이 멈췄으면 죽은거야.
[간] 끝장난거죠.
[회] 정말 불쌍해.
[간] 너무 슬퍼요.
[배] 아니, 이럴수가. 살려낼 방법이 없단말야.
[고] 하늘에 대고 맹세하는데 검정색이 틀림없어요.
[교] 우리 아버지에 대고 맹세하는데 흰색이 확실해.

- '회', '배', '간'은 감정이 점점 격해지더니 울음을 터뜨린다.
- '교'와 '고'는 승강이를 계속한다.
- 이때 '대'가 벌떡 깨어난다.
- 사람들은 놀라며 뒷걸음친다.
- 서로를 쳐다보며 멍하니 있더니 잠시 후 살며시 미소 짓으며 악수한다.
- 가볍게 어깨를 도닥거린다.
- 포옹한다.
- 서로 서로 포옹하기 시작한다.
- 크게 웃는다.
- 껴안고 뒹군다.

[모두] 하 하 하 하 하...
[모두] 호 호 호 호 호...
[모두] 깔 깔 깔 깔 깔...
[모두] 껄 껄 껄 껄 껄...
[모두] 헤 헤 헤 헤 헤...
[모두] 쿡쿡쿡 킥킥킥...

S#9. 아파트 안 (밤)

- '교'와 '회', '배'과 '간', '대'와 '고'가 서로 짝을 이뤄 섹스하고 있다.
- 신음소리. 격렬한 호흡소리.

[간] 쌌어요?
[배] 응?
[간] 쌌냐구요?
[배] 아니.
[교] 좋아.
[회] 나두.
[고] 끝내준다.
[대] 아파 죽겠어.
[고] 참아
[배] 아악
[대] 좀 더 꽉 조여봐.
[간] 이렇게요.
[교] 죽었어요?
[회] 응
[간] 뒤로 할까요?
[배] 괜찮아?
[간] 그럼요.
[고] 아직도 아퍼?
[대] 피나.
[회] 세워줘.
[교] 어떻게?
[회] 빨아봐.
[교] 싫어요, 더럽게.
[회] 무슨 말을 그렇게 해.

- 모두 절정의 순간에 다다른다.
- 비명소리, 거친 호흡소리가 뒤섞인다.

[모두] 죽인다, 정말!

- <O.L>
- '교'는 과자를 먹으면서 텔레비젼을 시청하고 있다.
- '배'는 마사지를 하고 있다.
- '간'은 체조를 하고 있다.
- '고'는 만화책을 읽고 있다.
- '회'는 독서를 하고 있다.
- '대'는 전화를 건다. 전화 거는 소리가 일그러져 있다.

[대] 응? 응. 으으응. 으응. 응! 으으응. 응. 으응...
[모두] ('대'를 제외한 나머지) 조용!
[대] (작은 소리로) 그래서? 그래. 그으래. 그래.
[모두] ('대'를 제외한 나머지) 시끄러워!
[대] (더 작은 소리로) 뭐? 뭐라고? 뭐가 어떻게 됬다구? 뭐?
[모두] ('대'를 제외한 나머지) 쉬이이잇! 쉿 쉿 쉿
[대] (큰 소리로) 몰라, 끊어!

- '대'가 전화를 끊으면 모두 잠자리에 든다.
- 각양각색의 포즈로 잠이 든다.

S#10. 에필로그, 노래방 (밤)

- 모두 악기를 하나씩 들고 오케스트라를 구성한다.
- 탄생을 축하하는 오케스트라의 연주. 곡목은 '탄생교향곡'. 그러나 침묵의 오케스트라이다.
-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연주하기 시작한다.
- 연주가 계속되어감에 따라 조심스럽게 점점 느릿느릿 연주한다.
- 음악에 맞춰 서서히 <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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